태국 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거운 도시!

정말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서 더 좋은 곳.

“거기까지 가려면 762개의 커브를 돌아야 한대.”
“멀미하지 않을까? 그렇게까지 해서 갈 필요가 있는 곳이야?”’

762개의 커브 길이라니. 요즘 들어 심해진 멀미가 걱정되었다. 원래 멀미가 심한 체질은 아니었는데. 매번 할머니 네 집 갈 때마다 꼬불꼬불 돌아가던 죽령재를 넘으면서도, 멀미하는 것은 동생이었다. 그런데 배낭여행을 시작하고 나서부턴 버스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두통과 울렁거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시간이 남아돌아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괜한 걱정만 늘어서 그런가.

 

빠이의 상징과도 같은 ‘762번의 커브’

 

치앙마이에서 빠이까지는 3시간 정도가 걸린다. 다음 목적지를 가기 위해선 빠이에서 치앙마이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그럼 총 1,524개의 커브를 돌아야 한다는거야? 이렇게까지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남들 다 간다고 나도 혹해서 우르르 몰려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인터넷에서 본 글들이 나의 맘을 설레게 했다. 빠이요? 아무것도 없지만, 아무것도 없어서 좋아요.

지금까지 여러 도시를 지나쳐왔지만 ‘아무것도 없어 좋다’는 도시를 만나보질 못했다. 가면 뭘 해야 하고, 뭘 먹어야 하고, 뭘 봐야 하고… 아무것도 없어 좋다는 얘기는 오히려 빠이라는 도시를 가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런 미니밴을 타고 꼬불꼬불한 산 길을 3시간여를 달린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 나는 멀미할 것만 같아서 뭘 먹지를 못하겠는데…

 

치앙마이의 버스터미널에서 미니밴을 타고 험한 길을 굽이굽이 돌아 빠이에 도착했다. 오기 전부터 멀미는 하지 않을까, 험난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두근두근 걱정되는 맘 설레는 맘 반반이었지만 생각보다 길은 험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때는 되게 심각했는데 지금와서 되짚어보니 하는 얘기지만 이런저런 길들을 겪어봐서 그런지 빠이로 가는 길은 생각했던 것보다 험하진 않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빠이로 가는 길을 기록한 사진. 이런 산길을 따라 들어갈 생각을 누가 했을까?

 

하지만 산 길을 굽이굽이 따라가다 도착한 빠이는, 이런 산 속에 뜬금없이 이런 마을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뭐 대단한 유적지나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태국 북부의 산 속 작은 마을에 이렇게나 많은 이방인이 모여있다니.

짐을 풀고 빠이 시내로 나왔다. 치앙마이에서 오전에 출발했지만 산을 너머 오는 동안 이미 날이 서서히 저물어버렸다. 하지만 빠이의 본격적인 시간은 해가 저문 후 부터 시작된다. 시내로 진입하는 길부터 서서히 고기 굽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사람들이 골목골목에서 조금씩 나와 넓지 않은 빠이 시내의 길을 채우고 있었다.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채우고 있는 빠이의 밤거리
여러나라 언어가 들리는 빠이의 밤거리는 결국 맥주 한 잔으로 대동단결 된다.

 

치앙마이의 야시장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지만 좀 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무국적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빠이의 야시장. 팟타이와 카오팟을 팔고 있는 옆집에는 초밥을 팔고, 그 옆집에는 피자를 팔고 있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민요를 부르며 공연하는 거리의 가게에서는 싸와디캅, 웰컴, 안녕하세요가 함께 섞여 들리고 있었다.

 

 

빠이의 야시장에서 태국 북부 고산족의 의상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일어나,”

흔들흔들하는 느낌에 눈을 슬쩍 떠보니 남편이 날 깨우고 있었다. 밖은 아직 까맣고 불빛하나 없는데?

“일출 보러 가야지.”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은 너무 추웠다. 맨날 뜨는 해가 뭐라고… 그냥 가기 싫다고 말하려고 하려다 일출을 보러 가자는 약속을 잊지 않고 이 시간에 깨운 남편 때문에 아직 잠이 덜 깼지만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해가 뜨지 않아 캄캄한 밤, 거리에는 우리가 탄 오토바이의 불빛만이 길을 밝히고 있던 새벽. 윤라이로 가는 길은 미리 알아두었기 때문에 헤매지는 않았지만 온통 새까만 길이 처음 가보는 길 처럼 무서운 마음에 덜 깼던 잠이 훅 날아가버렸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길을 따라 윤라이 전망대로 올라가니 일출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만 구름과 안개가 조금 끼어 있어 예쁜 일출을 보기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하늘이 꽤 밝아졌는데도 구름이 두텁게 깔려있어 막상 둥근 해를 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날이 밝아지면서 아랫마을의 몽글몽글 안개가 피어오르는 장면은 마치 아침 시간에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는 것만 같아 왠지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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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오자, 꼭 초저녁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아 일출을 보기 어렵다지만, 일출명소인 윤라이. 우리도 두터운 구름 위로 올라온 해를 간신히 볼 수 있었다.

 

윤라이에서 빠이로 돌아가는 길은 어둠이 깔려 있어 무서웠던 그 길과는 달리 햇볕이 내리쬐어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똑같은 해가 떠 있는 시간임에도 이른 아침의 풍경은 좀 다른 느낌으로,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부지런하고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밤이면 이런저런 노점들이 깔려 분주했던 빠이 시내의 거리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것도 없어 황량한 느낌이었지만 그 자리를 이른 아침부터 일을 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죽을 파는 노점들이 채우고 있었다.

 

 

아침에만 볼 수 있는 죽파는 노점
날달걀 위에 닭국물 맛이 나는 죽을 올리고, 마늘과 생강 튀긴 것 등을 올린 태국식 죽. 자꾸 생각나는 맛.

 

우리가 묵은 숙소는 빠이에서도 외곽에 있는 숙소로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어서 좋았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서 좋았달까.

빠이에 오면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서, 한적해서 좋다고는 했지만 결국 여행자들이 찾아오는 도시이다 보니 빠이 시내는 조금 복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숙소와 숙소가 담벼락을 마주하고 있고 밤이면 야시장 때문에 시끌벅적하기도 하고. 하지만 우리의 숙소는 조금 허름하긴 했지만 방 문 앞 디딤돌 위에는 가끔 쉬어가는 강아지들이 있었고 탁 트인 마당에는 뉘엿뉘엿 산 너머로 지는 해를 보며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해먹도 설치되어 있었다.

가끔은 내가 지금 태국, 빠이에 와있는 것이 아니라 경북, 영주에 있는 할머니 집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논밭, 산너머로 지는 해, 누우면 저 위에 보이는 지붕.

 

 

동생에게 이 사진을 보냈더니 ‘언니 지금 한국에 있는거 아니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누워있기 좋았던 해먹. 딩굴딩굴하는 내 곁으로 강아지들이 다가와 함께 시간을 즐기곤 했다.
숙소 앞 전경. 산 너머로 해가 지는 풍경을 보기도 하고, 호수에 가끔 오리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멍때리기도 했다.

 

어느샌가 이런 휴식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항상 해야할 것이 많아서 다이어리에 어제 했던 일, 오늘 할 일, 내일 해야할 일들을 체크해가며 빠진 것은 없나 초조해야만 했던 날들.

그런 날들을 지우고자 배낭을 메고 떠났건만 어느샌가 배낭 안의 것들을 지켜야만 한다는 생각에, 혹은 배낭을 벗을 날을 생각하며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압박에 시달려 혼자 두통과 어지러움에 시달렸던 것 같다. 빠이로 오가는 762개의 커브 길은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터널같은 길일지도 모르겠다. 아찔하고 어지러운 그 길을 통과하고 나면 빠이라는 매일매일이 축제같이 즐거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마을이 나타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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