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의 심장, 세르비아 노비사드와 수보티차 여행

요즘은 ‘세르비아’하면 어떤 이미지의 나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스포츠에 조금 관심이 있다면 축구에 열광적인 나라, 혹은 배구 잘 하는 나라, 테니스 스타 노박 조코비치의 나라? 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으로 뉴스에 곧잘 등장하곤 했었다.

크면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코소보 같은 단어의 파편으로만 잠깐 스쳐 지나갔다. ‘지구 반대편 어디선가는 계속 전쟁을 하고 있구나’ 정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의 전경

 

“내 친구 중에 코소보 사람이 있었어.”
“코소보?? 웬 코소보??”
“어학당에서 만난 친구였는데 어린 시절에 동네에 포탄이 떨어지고 그래서 엄마랑 테이블 밑으로 숨고했던 기억이 있다는 말을 해줬었어.”

세르비아 여행을 계획하던 중, 남편의 한마디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었던 것이다. 충분히 우리 세대에서도 그 상흔을 느낄 수 있는 가까운 과거. 그래서인지 ‘세르비아’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전쟁, 독재, 공포정치, 이런 무시무시한 것들이었다. 남편이 크로아티아를 여행하기 전에 ‘밤이면 총성이 울리고 유혈이 낭자한 곳’이 아니냐고 했었는데 내게는 세르비아가 그런 이미지였다.

 

 

매일매일이 축제, 흥겨운 도시 노비사드(Novi Sad)

우리는 크로아티아의 오시예크(Osijek)라는 도시에서 버스를 타고 세르비아 북부의 ‘노비사드(Novi Sad)’라는 도시로 향했다. 오시예크도 크로아티아에서는 동쪽으로 치우친 곳이라 흔히 생각하는 ‘크로아티아의 분위기’와는 좀 다르게 황량한 곳인데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갈수록 더욱 관리가 안 된 도로, 허름한 집들이 나타나 마음이 불안해졌다.

 

노비사드의 버스 터미널

 

노비사드의 버스 터미널은 더욱이 크고 황량해서 ‘세르비아에 괜히 왔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버스 터미널 앞으로 나와보니 넓고 큰 도로, 하지만 오래된 버스와 거대하고 낡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 마치 동영상 속에서나 보던 공산권 국가의 모습 같아서 괜히 긴장되었다. 하지만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가 있는 노비사드 센터까지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 아저씨가 너무 친절하셔서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의 긴장은 금세 사라졌다.

 

 

페트로바라딘 요새의 시계탑. 긴 침이 시침이고 짧은 침이 분침이다.
다뉴브 강은 독일에서 발원해 흑해까지 흘러간다. 페트로바라딘 요새에서 바라본 다뉴브강과 노비사드 시내

 

다뉴브 강을 끼고 있는 페트로바라딘 요새(Petrovaradin)의 식민지로 시작한 노비사드(Novi Sad)는, 세르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황금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듯이 버스 터미널 앞의 황량한 모습과는 달리 노비사드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노비사드 시청과 스베토자르 밀레티치의 동상
성모 마리아 교회와 19세기에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건물들

 

세르비아 국립극장으로부터 시작되는 길은 대성당같이 으리으리하게 큰 성모 마리아 교회로 연결된다. 성모 마리아 교회 맞은편은 시청으로, 노비사드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극작가이자 시장이었던 스베토자르 밀레티치(Svetozar Miletic)의 동상이 서 있다.

 

 

요반 요바노비치 즈마이의 동상과 세르비아 정교회 교회

 

성모교회 옆으로 연결되는 카페, 레스토랑과 상점이 즐비한 즈마이 요비나(Zmaj Jovina)거리를 걷다 보면 이 거리를 즐겨 산책하곤 했다는 세르비아의 시인 요반 요바노비치 즈마이(Jovan Jovanovic zmaj)의 동상이 서있고, 뒤에는 세르비아 정교회 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광장엔 항상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비눗방울 아저씨도 매일 광장을 지켰다.

 

항상 이 앞의 광장은 비눗방울을 만드는 아저씨가 있어 아이들이 뛰어놀고, 거의 매일 저녁이면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가족과 연인들이 모여 시끌벅적했다. 어떤 날은 화가가 나와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어떤 날은 음악가들이 나와 연주를 하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와인축제가 열려 기분 좋게 취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광장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세르비아의 다양한 와인들

 

인접국인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등이 와인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세르비아 역시 고대 로마시대 때부터 와인을 빚어왔다고 한다. 와인 축제가 있어 좋은 기회에 맛보게 된 세르비아 와인들은 지금까지 마셔온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와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섬세한 맛과 풍부한 과실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세르비아엔 ‘라키아’라는 포도로 만든 증류주도 유명한데 향과 맛이 독특하고 좋았다.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등 발칸반도 대부분에서 맛볼 수 있는 전통주이지만 나라마다 조금씩 그 맛과 느낌이 달랐던 것 같다. 크게 차이야 없겠지만 서울 소주, 부산 소주 맛이 다르듯이.

그렇게 ‘세르비아에서 맛보는 라키아는 또 세르비아만의 특징이 있겠지?’하며 남편이 하루는 친해진 주민들과 라키아를 한 잔, 두 잔 맛있다고 홀짝이더니 새벽에 코알라가 되어 들어오긴 했지만.

 

 

파스텔톤으로 그려진 아르누보의 도시 수보티차(Subotica)

하루는 노비사드에서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인 수보티차(Subotica)에 다녀왔다. 노비사드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좋은 아름다운 도시라길래 기대를 듬뿍했는데 도시 중심부에 다다르자마자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동화 속 마을 같아!”

노비사드도 예쁜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수보티차는 더욱더 아름다운 도시였다. 아르누보 양식으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파스텔 빛 자태를 뽐내며 늘어서 있는 거리는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 한참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을 때 부다페스트를 거쳐 수보티차까지 전해진 아르누보 양식은 ‘헝가리안 아르누보’라하여 수보티차에서 꽃을 피웠다고 한다.

 

수보티차의 거리.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하다.
수보티차의 저축은행 건물. 윗부분은 민속적인 심볼로 장식되어 있고, 그 당시에 드물게 1층에 큰 창을 낸 건물이었다고 한다.

 

세르비아인데 왜 ‘헝가리안 아르누보’인가하면, 수보티차는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헝가리 왕국에 속해있던 도시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 중 32% 이상이 헝가리 사람이고 수보티차가 속한 보이보디나 (Vojvodina) 지방은 공식 언어가 6개나 되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지역이기도 하다.

 

 

수보티차의 시청과 어우러진 파란색의 분수대

 

다른 유럽의 도시와 달리 수보티차의 시내 중심에는 큰 교회나 성당이 없다. 하지만 시청이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온 마르셀 코모르와 데즈소 자카브가 지은 시청은 약 76미터의 높이로 수보티차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시청을 보려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둘러봐야 하는데, 우리가 관광안내소에 도착했을 시각에 마침 바로 직원이 안내해주겠다고 해서 운 좋게도 시청 안의 그랜드홀(Grand hall)과 종탑 위로 올라가 수보티차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종탑 위에서는 수보티차의 아기자기한 시내와 시청 바로 아래의 눈부시게 파란 분수대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시청 안의 의회실 장식도 아름답다.
아름다운 장식으로 둘러싸여 있는 의회실
시청의 탑 위에서 내려다본 수보티차 시내. 파란빛 분수대가 아래로 보이고 왼쪽 상단에 돔으로 되어 있는 시나고그(유대교회당)가 보인다.

 

우리가 아르누보 건물들을 보기 위해 수보티차에 방문했다고 하니 프랑스 파리에 가보는 게 꿈이라는 갓 스물이 된 직원은 방문 당시 공사 중이라 내부를 볼 수 없었던 시나고그(유대교회당,Synagogue)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수보티차의 시나고그(유대교회당)도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졌다.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엔 내부가 공사 중이어서 관람할 수 없었는데, 관광안내소 직원의 안내로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현재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
공작의 날개같이 표현된 스테인드글라스

 

시청과 같은 건축가들이 지은 시나고그는 16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임에도 공작의 깃털을 닮은 스테인드글라스 하며 건물 디테일 하나하나가 장식적인 요소로 가득 차있었다.

 

 

아르누보 양식의 레스토랑.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줬다.
오랜만에 저렴한 데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만나서 배 터지게 주문해봤다.

 

게다가 물가는 얼마나 착한지! 예쁜 아르누보풍의 건물 사이로 가지를 쭉쭉 뻗은 나무가 드리운 그늘 아래 맛있는 음식을 양껏 시켰는데(진짜 많이 시켰다) 세상에, 3만원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에 넉넉한 인심이라니, 아! 이런 곳을 왜 몰랐지? 세르비아 여행, 할만한데!

 

세르비아 가성비 좋은 숙소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