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가 사는 나라, 루마니아 여행

발칸의 파리,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

사람들은 익숙한 것보다 새로운 것을 찾기 때문일까? 요즘은 TV며 여행잡지며 소개해주는 곳들이 ‘저런 곳도 있었네?’라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유럽여행’하면 예전엔 유럽 서쪽의 영국, 프랑스 등지를 얘기했지만 이젠 ‘서유럽’, ‘북유럽’ 혹은 ’동유럽’ 인지 구분해줘야 한다.

유럽 곳곳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행해보지 않은 곳이 없다지만 그래도 ‘동유럽’에서도 동쪽으로 더 들어간 나라들은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미지의 세계로 여겨지는 것 같다.

친구들에게 다음 행선지가 루마니아(Romania)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한 친구가 ‘드라큘라 조심하라’라는 농담을 했다. 물론 루마니아는 ‘드라큘라’로 유명한 나라이긴 하지만 사실 그 외에도 때묻지 않은 자연과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였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부쿠레슈티 시내

 

대부분의 여행이 그렇듯, 루마니아 여행의 시작은 역시 수도인 부쿠레슈티(Bucureşti,Bucharest). 불가리아에서 타고 온 작은 버스는 우리를 부쿠레슈티 시내 한가운데 내려줬다. 부쿠레슈티 시내는 세상에, 내리자마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굉장히 화려한 도시였다. ‘발칸의 파리’라고 한다던가. 마치 파리 시내의 건축물을 누가 보고 베껴온 것처럼 고풍스럽고 화려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발칸의 파리’라 불릴 정도로 시내의 건물들이 고풍스럽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도 뭔가 조금 더 익숙하게 느껴졌다. 루마니아는 발칸반도에서도 독특하게 라틴계 민족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데, 사람들의 외모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거리에서 볼 법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루마니아’라 부르지만 현지인들은 ‘로므니아’라는 발음에 가깝게 자신들의 나라를 칭했다. ‘로마인들의 땅’이라는 뜻이란다.

게다가 더 이상 서투른 키릴문자를 더듬거리며 읽을 필요도 없었다. 간판에 다시 알파벳이 등장한 것이다! 말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고.

부쿠레슈티는 굉장히 화려한 도시였지만 반면에 묘하게 아픔도 느껴지는 도시였다. 화려하지만 빛바랜 건물들이 가득한 올드시티를 조금 벗어나 걷다 보면 마치 파리의 샹젤리제 같은 대로가 나타나고 그 길의 끝에 엄청나게 거대한 괴물 같은 인민궁전(Palatul Parlamentului)이 나타난다.

 

 

현재는 국회 건물로 사용되는 인민궁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şescu), 자신의 가족들까지 우상화했던 독재자가 만든 화려한 궁전. 인민궁전은 궁전이라고 하기엔 좀 차갑고 위압감이 느껴지는데, 건축 과정에서 차우셰스쿠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설계를 여러 번 바꿨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나마도 1989년에 혁명으로 차우셰스쿠가 처형당하고 대규모의 공사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미완성인 상태로 완성되었다.

지금은 의회로 쓰고 있고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단일건물이라는 타이틀 아래 관광객들이 구경 오는 곳이지만, 이렇게나 거대한 건물을 보며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루마니아 수도 여행,
부쿠레슈티 평점 좋은 숙소 찾기!

 


 

가늘게 뜬 눈들이 지켜보는 곳, 시비우

우리는 부쿠레슈티를 떠나 시비우(Sibiu)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실 루마니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은 마라무레슈(Maramureș) 지방의 목조 교회들과 부코비나(Bucovina) 지방의 수도원들.

처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할까 했는데, 아직은 대중교통이 여행하기엔 썩 좋은 편이 아니라 시비우에서 자동차를 렌트하기로 했다. 부쿠레슈티가 아니라 시비우에서 렌트하기로 한 것도 렌트비가 저렴해서.

이왕 시비우에 오게 된 것, 시비우 올드시티도 구경하러 가보자고 해가 지기 전에 부지런히 올드시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듬성듬성 있던 건물이 빼곡해지고 이제 올드시티에 진입하려나? 싶은 순간, 뒤통수가 따끔따끔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는데 누가 쳐다보고 있는 것일까?

 

눈을 가늘게 뜨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시비우의

 

바로 시비우의 집들이었다.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지붕들. 시비우의 지붕들은 제각각 눈을 가지고 있어서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게슴츠레하게 뜬 눈도 있었고, 초롱초롱하게 뜬 눈도 있었다.

 

게슴츠레한 눈, 초롱초롱한 눈

 

시비우는 중세 시대에 이주한 독일 이민자들이 세운 도시라고 하는데, 지붕 위의 은근한 눈들은 지붕 밑의 다락방 같은 공간에 낸 창문이라고 한다. 그 모양이 마치 감시하는 것 같아서 ‘감시하는 눈’이라고 부른다고.

 

 

시비우 올드시티의 광장
시비우 올드시티는 오래되었지만 아기자기한 멋이 있는 곳이었다.

 

시하는 눈들이 가득한 시비우를 떠나 마라무레슈 지방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저렴해서 빌린 렌터카는 이런 상태로 차를 출고시켜도 되나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 자동차 브랜드의 옵션이 모조리 빠진 기본형 차였다.

“너희 나라 차야, 좋지 않니?”

렌터카 업체 직원이 던진 실없는 농담에 ‘너 같으면 좋겠냐’라고 맞받아치고 싶었지만 괜히 얼굴 붉힐 일을 만들고 싶진 않아 그래그래, 하고 넘어갔다. 렌터카는 속도를 조금만 내면 차가 덜덜덜 떨렸지만 사실 마라무레슈로 가는 여정에서 그다지 속력을 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흙먼지가 일고 듬성듬성 패어있는 데다 도로 한켠에서 따각따각 굴러가는 마차 때문에.

 


 

마라무레슈의 목조 교회와 부코비나의 수도원

마라무레슈의 목조 교회들은 그리스 정교회의 종교적 전통에 목재를 다루는 이 지방의 정교한 기술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마라무레슈 지방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8개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만드는 방법으로 유명하단다.

 

마라무레슈의 풍경
아직도 마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8개를 모두 돌아볼 시간적 여유는 되지 않아, 바르사나(Bârsana)에 있는 수도원을 보러 가는 길에 있는 대천사 교회(Biserica de lemn Sf. Arhangheli)를 보기로 했다. 세계유산이 있다고 하면 으레, 관광지처럼 꾸며놓고 관광기념품 점도 있을 법 한데 목조 교회를 찾아가는 동안 오히려 ‘이런 곳에 세계유산이 있다고?’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라무레슈 8개의 목조교회 중 하나인 대천사교회
교회는 조용한 마을 안에 있었는데, 전통의상을 입은 할머니들이 많았다.

 

의심 속에 도착한 곳은 검은색 원피스와 검은색 두건을 쓴 할머니들이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산책하고, 들에서 베어낸 짚을 가득 실은 마차가 느릿느릿 지나가는 작고 조용한 마을 한가운데였다.

교회 앞에는 세계유산이라는 표지판이 있어 우리가 맞게 찾아왔단 것을 알려줬지만, 문이 굳게 닫혀있어 안을 볼 순 없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낡은 나무 기둥과 빛바랜 너와 지붕. 첨탑은 하늘을 찌를 듯이 뾰족하게 서 있었지만 지붕은 마치 춤을 추는 사람의 치맛자락처럼 하늘하늘해 보였다.

 

 

나무로 만든 높은 첨탑이 있는 바르사나 수도원
수도원의 신부님과 대화를 나누는 아저씨와 가족들
성화에 예의를 표하는 법을 알려주는 엄마와 아이

 

의외로 바르사나의 수도원(Mănăstirea Bârsana)은 규모가 컸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첨탑은 높이가 56m에 달해 유럽에서 가장 높은 목조탑이라고 한다. 보통 석조로 만들어진 유럽의 여타 교회나 수도원에 비해 나무로 만들어져 그런지 수도원임에도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멋이 있었다. 건물마다 예쁘게 잘 다듬어진 정원도 그렇고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몰도비타 수도원(Mănăstirea Moldoviţa)

 

마라무레슈에 목조 교회들이 있다면 부코비나 지방에는 벽화가 그려진 수도원들이 유명하다. 우리는 몰도비타, 수체비타와 보로넷 수도원을 돌아보았는데 벽화의 일부가 비바람에 씻겨 내려갔음에도 색깔이 선명하고 화려해서 원래 모습을 상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보로넷 수도원(Manastirea Voronet)이 유명한데 벽화에 쓰인 파란색은 ‘보로넷 블루’라고 불릴 정도로 독특한 색감을 자랑한다.

 

 

보로넷 수도원의 ‘최후의 심판’ 벽화

 

특히 수도원의 서쪽 벽을 가득 채운 ‘최후의 심판’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수많은 성인들과 붉은 강이 흐르는 지옥의 모습. 아마도 사람들은 벽화를 보고 다시 한 번 천국에 가기를 갈망했을지도 모른다.

 


 

드라큘라의 도시, 시기쇼아라와 브란

예전에는 헝가리 왕국에 속했던 지역인 시기쇼아라(Sighișoara)는 ‘드라큘라’가 태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 상인과 장인들이 이주하면서 형성된 도시답게 구도심인 역사지구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시기쇼아라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시계탑 앞에는 노란색으로 칠해진 레스토랑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바로 ‘드라큘라 백작’으로 유명한 ‘블라드 체페슈(Vlad Ţepeş)’가 태어난 곳이라 한다.

 

시기쇼아라의 시계탑
드라큘라, 블라드 체페슈가 태어난 곳으로 전해지는 건물

 

블라드 체페슈는 왈라키아 공국의 지배자로, 공포정치와 함께 인질들을 잔인하게 다뤄 ‘블라드 가시공(체페슈는 가시, 꼬챙이라는 뜻)’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유명한 소설인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가 블라드 체페슈의 일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별명도 ‘가시공’인데다 무시무시한 흡혈귀의 이미지가 있어 으스스 한 느낌이 들지만 루마니아 현지에서는 영웅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실제 역사의 블라드 체페슈는 오스만의 침략으로부터 왈라키아를 지킨 인물로, 적들에게는 무시무시하지만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에겐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영웅인 것이다.

 

 

드라큘라, 블라드 체페슈의 그림
시기쇼아라의 골목길

 

드라큘라, 블라드 체페슈의 탄생지라는 것을 제외하면 파스텔 톤 노란빛으로 가득한 시기쇼아라는 작고 아담한 도시였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지구는 오래된 건물들로 가득하고 정겨운 돌담길들이 골목골목 있어 나들이를 나온 가족, 견학을 온 학생들로 북적였다.

시기쇼아라에서 차로 2시간 남진 떨어진 ‘브란(Bran)’이라는 도시에는 ‘드라큘라 성’이라 불리는 브란성(Bran castle)이 있다. 13세기 요새로 세워진 이 성은, 블라드 체페슈가 살았다고도 하고 소설 드라큘라의 배경이 되기도 한 곳이다. 드라큘라 성이라고 하니 ‘오싹’할 준비를 하고 성 입구에 도착했으나 으스스하긴 커녕, 루마니아를 여행하면서 가장 많은 여행객을 이 곳에서 만났다.

 

 

높은 곳에 있는 브란성
브란성 입장권을 사는 사람들. 관광객들이 줄서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줄 서서 종종걸음으로 들어간 브란 성은, 오싹하다기보단 의외로 동화 속에 나올 것만 같은 중세 시대의 성이었다. 드라큘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기념품 상점과 짧게 안내되어 있는 블라드 공의 잔인한 처형 방식이었다.

 

 

브란성 내부

 

브란성은 성이라기엔 규모가 작아, ‘드라큘라 성’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오면 크게 실망할 것만 같았다. 요새를 성으로 개축해서인지, 사실 성이라기보단 큰 요새 같은 분위기였다.

 

 

시나이아(Sinaia)의 펠레슈성(Peleș Castle)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 중 하나로 손꼽히는 트란스파가라산(Transfăgărășan)

 

물론 서유럽에 비하면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져있지 않아 아쉬운 점이 많았으나 그렇기 때문에 루마니아는 ‘여행할 맛’이 났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시비우, 시기쇼아라와 브란 성이며 올록볼록한 언덕들과 초록 수풀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양들. 아직도 마차가 지나다니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루마니아 시골 마을들. 루마니아 여행은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를 탐험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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