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이탈리아 남부 여행, 태양빛 가득한 시칠리아 여행

꼭 가고 싶었던 이태리 여행지!

토끼를 닮은 섬 앞에 있어 토끼해변이라 불리는 곳. 맑은 물이 청량하게 눈에 담긴다.

‘티폰이 잠자고 있는 시칠리아의 에트나 화산’

우리 가족은 내가 어렸을 때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이었다. 아빠가 스킨스쿠버를 취미로 하셔서 주말마다, 여름마다 바다로 바다로 캠핑하러, 수영하러 많이 다녔는데. 어린 날의 기억에도 신기했던 것은 차가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아빠 대신 차를 배에 싣고 가족과 함께 섬으로 여행을 떠났다.

 

빌라 산지오반니에서 시칠리아의 메시나로 가는 카페리를 가득 채운 차들

 

우리가 향한 곳은 이탈리아 남쪽의 섬, 시칠리아(Sicilia, Sicily). 이탈리아를 여행한다면 꼭 가고 싶은 곳 중 한 곳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탈리아 여행 일정의 반 정도를 기꺼이 시칠리아를 여행하는데 투자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시칠리아를 훑을 수 있겠나 하는 마음으로.

시칠리아는 역사가 약 2,700년 정도 된 아주 오래된 섬이다. 그 역사가 그리스, 로마 시대 때부터 있었고 아랍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으며 비잔틴제국, 신성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등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에 끼어있는 위치만큼이나 길고 파란만장한 역사를 자랑한다.

 

 

에트나 화산에서 내려다본 카타니아 시내

 

나는 시칠리아섬 여행의 핵심은 바로 ‘에트나 화산(Mount Etna)’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스 신화의 괴물 티폰이 산 아래에 갇혀 몸부림치고 있다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화산 중 하나인 에트나 화산은 분화구를 바로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일 것이다.

카타니아(Catania)에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에트나 화산으로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구름이 발아래에 있었다. 아래에서 볼 때는 꼭대기가 항상 구름에 덮여있어 몰랐는데 에트나 화산의 높이는 3,300m가 넘는다. 이 산의 높이는 화산이 분출할 때마다 조금씩 바뀐다고. 역시 살아있는 화산 답다.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 근처 땅은 메마르고, 황량해 보였다. 고산지대임을 알고 옷을 단단히 챙겨갔음에도 불구하고 산 위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 머리카락이 계속 뺨다귀를 강타하는 바람에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분화구 근처까지 타고 온 버스
가이드의 안내 아래 분화구 근처를 둘러보며 하이킹할 수 있다. 고산지대라 더운 여름임에도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웠다.
분화할 때의 에트나 화산의 모습. 최근엔 2016년에 분화했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위로 올라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분화구 둘레를 따라 걷는 체험을 할 수 있는데 분화구는 그냥 연기가 나는 구멍 정도로 보였다. 마녀의 수프처럼 마그마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그런 격한 비주얼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푹 꺼진 구멍에선 모래 사이로 연기가 미미하게 폴폴폴 올라오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은 티폰이 잠자고 있는 시간이겠지.

 

아그리젠토의 원형극장. 바다가 보이고 뒤로는 에트나 화산이 멀리 보인다. 구름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지만.

 

에트나 화산의 진가는 타오르미나(Taormina)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메시나(Messina)와 카타니아 사이의 산자락에 있는 이 작은 마을은 그리스 시대 때부터 겨울 휴양지로 이름난 곳이었기에 마을 곳곳에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적이 남아있다. 그중 타오르미나의 원형극장은 바다를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있어 아름답기 그지 없는 데다 저 멀리 에트나 화산의 봉우리가 보인다. 극장의 무대 너머로 바다와 산이 보인다니! 정말 어디에도 없을 천혜의 풍경이 아닌가 싶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이곳에서 에트나 화산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연기를 내뿜는 화산은 어떤 면에서도 두려움을 주지 않으면서 전체적인 풍경을 감싸고 있다.’

 

 

‘달콤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

시칠리아에는 ‘바로크 골든 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도시들이 있다. 바로 노토(Noto), 라구사(Ragusa), 모디카(Modica).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아직까지 잘 보존이 되어 있는 곳들인데 노란빛 사암으로 지은 바로크풍의 건축물들이 즐비한 도시들의 풍경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우리에겐 ‘달콤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해야 할까, 달콤한 사람들을 만난 모디카, 시라쿠사(Siracusa), 아그리젠토(Agrigento)를 ‘골든 트라이앵글’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시라쿠사의 시장. 신선한 과일, 채소와 생선들이 가득했다.
시라쿠사에서 유명한 샌드위치. 치즈와 햄을 듬뿍듬뿍 넣어준다.

 

시라쿠사에는 유명한 샌드위치 집이 하나 있는데(정확히는 식료품점이라 해야 할 듯) 이 샌드위치 집의 사람들의 달콤함에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다. 한여름의 이탈리아, 그것도 시칠리아에서 정수리로 내리꽂히는 태양을 이겨내며 샌드위치를 하나 먹자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집 샌드위치가 유명한 이유는 할아버지가 치즈와 햄을 아낌없이 써서 만드는 푸짐한 샌드위치 덕분인데 눈앞에서 바로 만드는 데다 푸짐하게 내용물을 넣느라 시간이 걸려서인지 줄이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았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직원들은 계속 아낌없이 치즈를 시식해보라고 숭덩숭덩 잘라다 주기도 하고, 이탈리아 말 하나도 못 하는 우리에게도 말을 걸어주며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해줬다. 날이 너무 더워 뙤약볕에 치즈 시식하라고 날라주는 직원도 더워 보이길래 우리 앞에 왔을 때 휴대용선풍기로 바람을 좀 쐬어줬더니 곧장 가게로 들어가서 우리에게 시원한 얼음물을 한 병 주고 갔다. 그리고는 우리 선풍기를 한 번 가르키고, 우리를 향해 엄지 척! 어느덧 차례는 우리가 되어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이번엔 할아버지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더니 우리를 위해 ‘오 솔레미오’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든 샌드위치는 할아버지와 직원들의 유쾌함까지 더해져 맛은 원더풀. 솔직히 맛이 엄청 특별하진 않았지만 재료가 신선하고 풍부하게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꽉찬 맛이 났다. 할아버지는 발에 깁스까지 하고서도 유쾌하게 열심히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는데 우리가 다음에 방문할 때까지도 꼭 건강하시길.

 

 

모디카 숙소 아저씨의 센스 넘치는 환대. 장미꽃 한송이에도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그리고 식탁가득 먹을 것과 모디카의 특산품인 초콜릿이 놓여있었다.

 

두번째 달콤한 사람은 모디카의 숙소 주인이었다. 우리가 오기까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숙소 주인 아저씨는 우리를 위해 숙소 침대 위에 수건을 꽃으로 장식해두고 모디카의 특산품 중 하나인 초콜릿도 여러개 사서 선물로 주었다. 시칠리아에서 만난 숙소 주인들이 대개 친절하기는 했지만 정말 우리를 위해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모디카의 풍경을 보기 좋은 포인트부터 맛있는 식당, 이런저런 정보를 하나하나 챙겨주었다.

 

시칠리아 평점 좋은 숙소 확인하기!

 

 

숙소 아저씨가 알려준 포인트에서 바라본 모디카 시내의 모습.
밤의 모디카. 건물들 사이사이 주황빛 가로등이 켜져 있는게 낭만적으로 보인다.
시칠리아 전통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에서 맛본 전채요리

 

아저씨 덕분에 모디카 여행은 모디카의 특산품인 초콜릿 만큼이나 달콤하고,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체크아웃할때는 굳이 와볼 필요도 없는데 체크아웃할 시간에 맞춰 오겠다고 하더니 자전거에 직접 담근 와인을 하나 싣고 나타나서 우리에게 선물을 해줬다. 1.5리터짜리 페트병에 담긴 레드와인이었는데, 아저씨의 마음씨 만큼이나 맛있는 와인이었다.

 

 

아그리젠토의 터키인의 계단.
신전의 계곡의 헤라 신전(Tempio di Giunone)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 본 콘코르디아 신전(Tempio della Concordia)의 야경

 

세번째는 아그리젠토의 숙소 가족들! 우리가 묵은 숙소는 가족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주인아저씨 가족과 그 부모님이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영어를 할 줄 알았지만 할아버지는 영어를 하나도 하지 못했는데 뭔가 우리에게 할 말이 엄청 많아 보였다. 할아버지는 꼭, 우리에게 ‘신전의 계곡(Valle dei Templi)’에 가거든 야경까지 보고 오라고 했다. 이탈리아어를 잘 몰라서 정확한 말은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아무튼 정말 아름답다고! 시칠리아는 아직 여행정보가 많지 않아서 현지인들에게 듣고 가게 되는 곳들이 많은데 ‘터키인의 계단(Scala dei Turchi)’과 신전의 계곡의 야경은 우리를 챙겨줬던 주인아저씨 가족들 덕분에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깔도, 깔도, 람페두사’

시칠리아에서 또 기대했던 장소 중 하나는 바로 ‘람페두사(Lampedusa)’섬이었다. 마치 배가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그림을 보여주는 물 맑은 이탈리아의 섬. 하지만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고작 13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섬. 람페두사는 팔레르모(Palermo)에서 비행기를 타면 갈 수 있는데 우리는 파빅냐냐(Pavignana)라는 섬을 들렀다가 트라파니에서 하루 숙박하고, 바로 팔레르모 공항으로 가서 람페두사에 가는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이탈리아는 주차에 대해 좀 엄격한 편이라 항상 숙소를 예약할 땐 주차를 어디에 하면 되는지 사전에 물어보고 예약을 했는데 트라파니의 숙소 주인은 바로 집 앞에 주차하면 된다고 했다. 따로 주차구역이 있는게 아니고 노상주차라 좀 꺼림칙하긴 했지만 빈공간에 주차를 해도 된다고 했으니 주차를 하고 아침에 짐을 챙겨 팔레르모 공항으로 떠나기 위해 숙소를 나섰는데, 분명 어젯밤에 주차한 자리에 차가 없는 것이었다!

 

람페두사로 가는 이 비행기를 타기까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차 유리를 깨고 절도를 해간단 소리는 들었어도 차가 통째로 도난당한단 소리는 못 들었는데. 눈 앞이 깜깜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다른 날도 아니고 하필, 바로 공항에 가야하는 날 아침에! 정신을 붙잡고 숙소 주인에게 전화해봤지만 숙소 주인도 영문을 알 수 없는 모양이었다.

거의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직전의 심정으로 지도에서 경찰서를 검색해서 찾아가 우리의 상황을 더듬더듬 설명했더니 알아들은 경찰관이 뭔가를 조회했다. 그런데 분명 어젯밤에 주차구역에 맞춰 주차한 우리 차가, 견인된 차량보관소에 있다고 했다. 어째서 차량이 견인되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상황이 급하기 때문에 경찰관 아저씨에게 번역기를 돌려 ‘팔레르모 공항에 오전 11시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한다.’는 말을 보여줬더니 경찰관 아저씨가 경찰차에 타라는 손짓을 했다. 덜덜 떨리는 손을 남편과 꼭 붙잡고 차량 견인소에 도착해보니 우리 차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내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서 건드리면 바로 울 것 같이 서 있으니 경찰관 아저씨가 차량 견인소의 직원에게 ‘이 친구들 급하니 처리를 빨리 해달라’는 느낌으로 얘기를 한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무에 가려져 표지판이 보이지 않았었는데, 하필 그 날이 도로 청소하는 날이라 주차를 하면 안 되는 날이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경찰관의 도움으로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게 공항으로 향할 수 있었다. 물론 거의 비행기 출발하기 직전의 시간에 기적적으로 도착했지만.

 

 

람페두사 섬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 토끼섬(isola dei Conigli)으로 가는 길
토끼를 닮은 섬 앞에 있어 토끼해변이라 불리는 곳. 맑은 물이 청량하게 눈에 담긴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람페두사는 내리자마자 더운 공기가 턱 하고 코를 찔렀다. 시칠리아도 더웠는데 람페두사는 만만치 않게 더웠다. 람페두사는 이런 기후와 변변치 않은 자원 덕분에 무역의 중간기지로 잠깐 사용되다 무인도로 한참 방치되었고 근래에 와서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가까운 까닭에 정말 덥고 사막같은 분위기로, 섬의 대부분은 주황빛의 햇빛에 바싹 마른 모래 뿐이었고 나무가 거의 없어 거리를 걸을 때면 아스팔트에 구워지는 계란후라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방 바깥으로 발만 디뎌도 온몸의 수분이 마르는 느낌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숙소 주인인 마리아는 우리를 보며 ‘깔도(caldo, 덥다), 깔도’하며 손을 부채질하듯 휘휘 저었다.

 

 

해질녘의 람페두사의 모습
간단한 술 한잔과 즐기는 아페리티보

 

람페두사는 더운 만큼이나 느리게 흘러가는 섬이었다. 더워서인지 음식점, 슈퍼 등은 이른 아침이나 저녁 시간이 아니면 영업하지 않았고 관광객들 모두 그다지 활발하게 액티비티를 한다기보단 점심을 먹고 늦은 오후 즈음 바닷가에 나와 해수욕을 하고 저녁으로 아페리티보를 즐겼다. 느긋하게 아침에 일어나서 점심이면 문을 닫는 슈퍼에 장을 보러 갔다 왔다가 아점을 먹고, 이글이글한 태양의 기세가 좀 꺾이는 오후 시간엔 해수욕을 하고 나서 항구의 생선가게에 가서 저녁에 먹을 해산물을 사고. 별일 없는 람페두사의 하루하루였지만 섬을 떠날 땐 너무 아쉬웠다.

 

 

팔레르모의 밤 풍경
인상적이었던 팔레르모의 내장 버거

 

우여곡절 끝에 떠났던 팔레르모로 다시 돌아와 시칠리아 여행을 마무리했다. 팔레르모는 마치 시칠리아의 나폴리 같은 느낌. 약간 허름한 듯 정리되지 않은 건물들 사이로 섬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유적들이 쏙쏙 들어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팔레르모에서 먹은 ‘내장 버거’는 정말 인생 버거 중 하나라고 꼽고 싶다. 먹고 나서 너 그 맛을 또 느껴보려고 시칠리아를 떠나는 날 찾아갔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어떡해, 먹으로 또 와야지. 언젠간 또 올 수 있겠지? 시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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