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여행, 오로라보러 떠난 얼음왕국!

여행에는 계기가 필요하다. 남편이 스코틀랜드에서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다리를 크게 다쳐 한 달여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칩거 아닌 칩거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반깁스 상태로 다리를 꽁꽁 동여매 비틀비틀 걸어 다니는 남편과 함께 어딜 돌아다닐 순 없었기에 더블린에서 우리는 서울의 집에서 휴일을 보내듯 삼시 세끼를 차려 먹고, 예능프로그램을 보다가 영화를 보다가 쉬다가, 그랬더랬다.

여느 때처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영화를 하나 보게 되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이하 월터 미티)’ 소심하고, 자주 멍때리는 회사원인 월터 미티가 사진작가를 찾으러 여행을 떠나게 되는 내용의 영화인데 기가 막히게 찰떡같이 떨어지는 배경음악과 배경이 되는 아이슬란드의 풍광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영화 내용 중엔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히말라야와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모두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그래, 가자! 아이슬란드로!”

영화를 본 까닭도 있었지만, 우리가 머물던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는 아이슬란드로 가는 저렴한 비행편이 많았기 때문에 가는 것도 생각보다 수월했다. 레이캬비크(Reykjavík)의 케플라비크 공항으로 착륙하는 비행기 안은 많은 사람의 기대와 설렘으로 들뜬 공기가 가득했다. 보통 유럽에서 운행하는 비행기 안은 여행객보다 도시와 도시를 오가는 비지니스 맨이나 친척을 만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분위기가 차분한데, 레이캬비크로 착륙하는 비행기 안의 사람들은 모두 창문에 바짝 붙어서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사방엔 눈 밖에 없었다.

 

이름처럼 아이슬란드는 정말 얼음왕국 같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하얀 눈 뿐, 비행기 시간에 맞춰 운행한다는 공항버스는 두터운 옷을 입고 온 사람들을 각각의 호텔로 흩뿌려줬다. 아이슬란드는 ‘링로드’라고 불리는 1번 국도를 따라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돌 수 있는데, 어딜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우리는 중간에 ‘월터 미티’에 나온 장소들을 가기 위해 동쪽과 서쪽을 좀 더 여행하려고 보름정도 자동차를 렌트하기로 결정했다.

 

 

레이캬비크에서 가장 높은 할그림스키르캬.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다.
할그림스키르캬에서 바라본 레이캬비크 시내외곽

 

레이캬비크를 떠나기 전날, 할그림스키르캬(Hallgrimskirkja)에 올라 시내를 쭉 둘러봤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시내 구역을 벗어나자마자 하얀 설산, 그 사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증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더블린에서 한 달여를 오도 가도 못하면서 여행 중임에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는데 낯선 풍경을 접하니 오랜만에 여행하는 기분이 가득했다. 게다가 아이슬란드에선 오로라도 볼 수 있다던데. 우리,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지붕 너머로 본 흐릿한 오로라

 

본격적인 여행을 떠나기 전, 레이캬비크의 지붕들 너머로 미약한 오로라를 보긴 봤지만 너무 약한 까닭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이번 여행에서 꼭, 오로라를 보고 싶은데.

아이슬란드의 링로드는 말 그대로 동그란 원 모양이기 때문에 레이캬비크에서 시계방향으로 돌기도 하고, 반시계방향으로 돌기도 한다. 우리는 ‘골든 서클’이라 불리는 아이슬란드 남부의 유명한 관광지들을 먼저 보기로 하고 레이캬비크부터 1번 국도를 따라 반시계방향으로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하얀건 눈, 검은건 도로
눈이 얼마나 왔는지, 표지판이 눈에 파묻혀 있었다.
눈 밭에서 신나서 점프!

 

제설이 비교적 잘되어 있던 레이캬비크를 떠나자마자 시야는 흑백으로 변해버렸다. 검은 건 도로, 하얀 건 풍경. 아이슬란드에서 유일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씽벨리르 국립공원 (Thingvellir)엔 유라시아판과 북아메리카 대륙판이 만나는 곳이 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지각이 만나는 이 신비로운 곳에선 세계최초의 의회가 열렸다고도 한다.

 

레이캬비크 인기 숙소 순위 보기!

 

 

세계최초의 의회가 열린 곳, 씽벨리르 국립공원

 

그리고 다음 목적지는 게이시르(Geysir) 지열 지대. 근처 주차장에 주차하자마자 코를 찌르는 구릿한 유황 냄새와 함께 겨울에 느끼기 힘든 습기 가득한 공기가 훅하고 밀려왔다. 가는 길 내내 증기로 인해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마치 안개 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 유명한 건 간헐적으로 폭발하는 물기둥인데, 약 40m 정도의 높이로 수분 간격마다 분출한다고 한다.

 

 

지열로 인해 증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게이시르
수분 간격으로 물기둥을 뿜어내는 스트로쿠르(Strokkur)간헐천

 

오기 전 아이슬란드를 주제로 한 여행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물기둥이 엄청나게 솟구치는 걸 미리 보고 왔는데 기대한 것보단 ‘우와-‘하는 기분은 아니었다. 기계가 아니다 보니 도대체 몇 분 간격으로 분출하는지 알 수 없는 구덩이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대하고 쳐다보다가 생각보다 높지 않은 물기둥에 에이- 하고 한숨을 쉬고 또 몇 분간을 기다렸다가, 도대체 언제쯤 높게 솟구치는거지… 의문을 갖기도 하고. 하지만 자연의 위력은 엄청나긴 엄청났고,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세상에, 이 바닥 아래엔 뭐가 있길래 진흙이 이렇게 뿌글뿌글 끓고 라면 물마냥 보글보글 끓어오르는지.

 

 

웅장한 소리를 내뿜으며 쏟아지는 굴포스

 

씽벨리르-게이시르를 찍고 금빛 폭포라 불리는 굴포스(Gullfoss, foss는 폭포라는 뜻)로 향한다. 두 개의 계곡 사이로 모든 소리를 삼켜버릴 듯 쏟아지는 물줄기가 ‘골든루트’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듯했다.

 

 

폭포 뒤로 통하는 길이 있어 폭포를 뒤에서 볼 수 있다는 셀리야란드스포스
거대한 물줄기 덕분에 무지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스코가포스

 

그리고 계속 링로드를 따라 셀리야란드스포스(Seljalandsfoss)와 스코가포스(Skógafoss)를 보고 해변에 추락한 비행기 잔해가 있다는 곳까지 찾아갔다. 우리가 방문했을 땐 비행기 잔해 근처까지 차로 갈 수 있었는데, 자갈길에 눈이 많이 쌓여서 앞서간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운전해서 접근할 수 있었다.

 

 

해변가에 추락한 비행기 잔해. 다행히 승객들은 무사히 생존했기에 잔해임에도 의미가 있다.

 

한참 해질녘에 비행기를 배경으로 이런 저런 사진을 찍다가 어둑어둑해져 늦으면 길이 안 보일까 봐 돌아가려는데, 세상에! 차 바퀴가 눈구덩이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했다. 남편이 뒤에서 차를 밀고 나는 액셀을 힘껏 밟으면서 한참을 고생했지만 애먼 바퀴는 한자리에 머물러 눈구덩이를 계속 깊게 파기만 할 뿐,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망했다.’

오늘 밤을 이대로 이 해변에서 지새워야 하나? 어떡하지, 견인차를 불러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 때쯤 우리와 함께 비행기 잔해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우리가 곤경에 처한 모습을 봤는지 저 멀리에서 달려와 함께 뒤에서 차를 밀어줬다. ‘원, 투, 쓰리!’ 천만다행이었다. 사람이 별로 없어 눈앞이 캄캄했는데. 우릴 도와준 친구들도 뿌듯했는지 ‘오늘 일을 페이스북에 올려야겠다’며 모두 하이파이브를 하고 헤어졌다. 이곳저곳에 깊이 파인 구덩이가 많더라니, 우리처럼 차바퀴가 빠져 고생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겠다 싶었다.

 

 

해가 비교적 일찍지는 북반구의 겨울이기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숙소에 도착해 오로라 예보 사이트를 수시로 들락거리고 창문 밖도 연신 쳐다봤지만 역시 이날 밤도 오로라를 보지 못한 채, 다음날은 검은 모래 해변으로 유명한 레이니스피야라(Reynisfjara)와 주상절리 레이니스드란가르(Reynisdrangar)를 보고 바트나이외쿠틀(Vatnajökull) 국립공원 근처의 요쿨살론(Jökulsárlón)과 해변에 빙하 조각이 널려있는 다이아몬드 해변을 구경하고 회픈(Höfn)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거센 바람에 성난 백마무리 처럼 달려오는 파도
주상절리와 검은 모래 해변. 파도가 워낙 거칠어 사진을 찍다가 휩쓸리는 인명사고가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요쿨살론의 빙하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물개들
다이아몬드 해변의 빙하 조각들

 

디르홀레이(Dyrhólaey) 언덕에서 레이니스피야라를 내려다보는데 엄청난 바람에 파도가 마치 백마 무리가 달려오는 것처럼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철썩이고 있었다. 바람이 정말 거세서, 까딱하면 사람이 날아가겠다 싶은 정도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눈구덩이에 빠진 전날에 이어 우리의 불운은 그치지 않았다… 사건은 검은 모래 해변과 주상절리까지 다 보고 난 뒤에, 비크(Vik) 마을에서 쉬다가 발생했다.

트렁크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와중에 작은 돌이 바람에 섞여 휘날릴 정도로 몸을 가누기 힘든 바람이 불어왔다. 아이슬란드에서 차량을 렌트할 땐 돌에 대한 스크래치나 바람으로 문이 꺾였을 때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차 문이 꺾였을 경우 상당한 비용을 청구한단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물건을 정리하느라 트렁크 문을 열었는데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오자, 나도 모르게 ‘트렁크 문이 꺾이면 안 된다…!!’라는 생각에 트렁크 문을 바로 닫아버린 것이다. 문제는 차키를 손에 쥐고 있다가 그 옆에 두고 물건을 정리하면서 순간적으로 트렁크 문을 닫았는데…아뿔사.

 

 

자동차 문을 열기 위해 온 수리공과 씁쓸한 뒷모습의 남편

 

차키는 트렁크 안에, 저기 보이는데 차 문은 요지부동 열릴 생각을 하지 않고… 차 문 꺾이는 거 걱정하다 차키를 차 안에 넣어버리고 문을 닫아버리다니. 렌트업체와 통화하고 여기저기 통화해본 끝에 마을의 자동차 수리공이 와주기로 했고 다행히 문을 열 수 있었지만… 아이슬란드의 높은 인건비를 체감한 순간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도로 경계가 구분이 안갈정도였다.
Laufskálavarða, 사람들이 돌을 쌓아 만들어진 곳. 무사 여행을 기원했다.
산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오로라. 이번 여행에서 제대로 된 오로라를 만날 수 있을까?

 

차는 눈구덩이에 빠지고, 차 키를 차 안에 넣고 닫아버리고… 자동차 여행에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아 이 사건들을 액땜으로 치고 거대한 오로라라도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남부 여행의 끝자락인 회픈에 도착하기까지 오로라는 아직 우리 눈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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