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 여행, 현재와 과거의 교차점

유레일의 유효기간이 종료되었다. 이탈리아 로마부터 시작해 스위스, 독일 서부와 북부를 지나 체코, 오스트리아까지 크게 위로 반 바퀴를 돌아 어느덧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화창한 날씨의 부다페스트는 얼마 전까지 입던 두터운 옷을 배낭에 넣게 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숙소로 가는 지하철을 탔는데 아무런 장식 없이 수수한 역의 분위기와 철판에 페인트만 칠한듯한 전차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건물들도 크지만 묘하게 수수한 느낌이 공산권이었던 나라의 분위기는 대부분 이런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에서 느꼈던 분위기와 매우 흡사했기에.

 

공산주의 시절 만들어져 투박한 모습의 부다페스트 지하철. 하지만 1호선은 더 이전에 만들어져 고풍스럽고 귀엽기까지 하다.
클로틸드 궁전. 아르누보 양식으로 한 때는 화려함으로 이름 높은 건물이었지만 현재 북쪽 건물만 개보수되어 사용되고 있고 남쪽건물은 시커멓게 방치되어 있다.
화사한 분위기의 부다페스트 거리 풍경

 

하지만 지하철에서 내려 부다페스트 시내로 올라오자 약간 우중충했던 분위기는 급반전되어 눈앞에 벨에포크 시대의 영화가 펼쳐졌다. 아르누보 풍의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건물들, 약간 옛스러우면서도 투박하지만은 않은 레스토랑, 카페들. 우리 숙소도 딱 그런 분위기였다. 옛날에 지어진 아파트인 것 같은데 오래되었지만 잘 관리된 것 같았고 숙소 안의 오래된 가구와 소품들에서 느껴지는 공기는 색달랐다.

 

 

우리 숙소는 레트로 아파트 안에 있었는데 구조가 독특했다.
가구며 소품 하나하나 옛날 것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부다페스트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는 것이 바로 ‘루인펍(Ruin Pub)’ 이다. 루인펍은 폐허 같은 건물에서 맥주나 칵테일 등의 음료나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최근 들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힙한’ 장소다.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부다왕궁이 있는 부다(Buda) 지역과 페스트(Pest) 지역으로 나누어지는데 루인펍들은 대부분 페스트 지역의 ‘제7구역’에 많이 밀집되어 있다.

 

 

부다(Buda)쪽에서 페스트(Pest)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세체니 다리 뒤로 펼쳐진 평탄한 곳이 페스트 구역이다.
7구역의 풍경. 폐허같은 건물들 사이사이 루인펍들이 있다.

 

여기에는 유럽에서도 꽤 큰 시나고그(Synagogue, 유대예배당)이 있을 정도로 예전에 유대인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헝가리의 중흥기에 아파트들이 많이 지어져 지금까지도 남아있는데 안타깝게도 헝가리는 세계 2차대전 중 유대인 박해가 심했던 곳 중 하나로 전쟁 중 유대인들이 떠나고 헝가리가 공산주의 체제로 가면서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폐허처럼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런 곳들을 2000년대 초부터 펍, 레스토랑 등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독특한 컨셉과 자유로운 분위기에 부다페스트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행객들도 많이 찾는 부다페스트의 특색있는 명소가 되었다.

 

 

우리가 방문한 루인펍, 심플러. 간판이 없었으면 여기가 펍인지도 모르고 지나칠뻔 했다.
심플러의 내부 공간. 자유롭게 착석하고 음식은 직접 주문하면 되는 방식이었다.
방마다 조금씩 분위기가 달랐는데 2층까지 확트인 공간인데다 장식 때문에 야외에 있는 느낌도 들었다.

 

우리는 루인펍 중에서도 최초로 만들어진 심플러 케르트(Szimpla Kert)를 방문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공장에 들어가는 듯, 독특했는데 2층까지 뻥 뚫려있는 공간은 약간 허름한듯하면서도 실내 캠핑을 즐기는 듯, 나무와 전구 등으로 꾸며져 있었고 숨겨진 공간 같이 배치되어 있는 방들은 제각각 다른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매력적인 분위기인 데다 폐건물을 활용해 새로운 명물을 탄생시킨 업사이클링의 대표적인 사례로 부다페스트에 방문한다면 꼭 방문해볼 만 하다. 우리가 방문했던 심플러는 꼭 음료를 시키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내부공간을 드나들 수 있는 오픈된 공간으로 많은 사람에게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부다페스트 평점 좋은 호텔 보기!

 

 

부다페스트 봄 축제!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가판대. 간단하게 맥주와 한 잔 먹고 가기 좋은 음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루인펍을 나와 광장 쪽으로 향하니 광장이 시끌벅적하다. 부다페스트 ‘Tavaszi’ 축제라고 써있는데 ‘Tavaszi’가 무슨 뜻인가 궁금해 검색을 해보니 ‘봄’이라는 뜻이란다. 역시 부활절이 가고, 서서히 푸릇푸릇한 싹들이 보인다 싶더라니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부다페스트 사람들이 추운 겨울 바람에 옷깃을 여매고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을 그 광장에 여러 가지 먹거리들이 가득한 가판대들이 들어서 있었다.

 

 

매콤한 향기가 코를 자극하는 굴라시

 

여러가지 맛이 궁금한 음식들이 많았지만 역시 내 시선을 끄는 것은 ‘굴라시(Gulasch)!’ 커다란 무쇠솥에 매콤해 보이는 빨간 국물에 소고기가 바글바글 끓고 있는데 슬쩍 매콤한 향이 코끝을 스치는 것이 내 안에 잠들어있던 한국인의 소울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 못이기고 하나 사서 먹어보니 역시, “크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 맛은 마치, 육개장. 어휴, 갑자기 한식 땡기네.

 

 

부다페스트의 시장. 실내인데다 넓고 크게 만들어서 깔끔했다.
신선해 보이는 채소들.
푸프리카 파우더 등 헝가리의 특산품을 파는 매장.

 

굴라시로 촉발된 한식사랑은 나를 부다페스트의 시장으로 이끌었다. 날이 밝자마자 방문한 부다페스트의 시장. 실내에 있어 깔끔하고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찾아보니 굴라시의 매콤한 맛은 헝가리의 파프리카 파우더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파프리카 파우더가 고춧가루만 하겠냐 싶었지만, 상점에 가보니 생각보다 종류가 꽤 다양했다. ‘한국인은 매운맛이지!’를 외치며 상인에게 입을 호호 불어가는 제스쳐까지 취하며 가장 매운 파프리카 파우더를 구매했다. 맛이 어떨까 너무 궁금했는데 숙소의 주방이 여의치 않아 개봉은 다음 기회로. (나중에 제육볶음을 해 먹었는데 매콤한 맛이 향수를 달래주기에 딱 좋았다.)

 

 

메멘토파크는 외곽에 있어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또 환승해야 했다.
우두커니 서 있는 스탈린의 발
원래 부다페스트에 있던 스탈린 조형물(위), 잘리고 난 뒤(아래)

 

우리의 부다페스트 마지막 방문지는 메멘토파크(Memento Park). 부다페스트 주요 관광지에선 좀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흥미로운 곳이었다. 헝가리가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바뀌는 과정에서 기존에 있던 공산주의의 프로파간다를 위한 석상, 동상 등 조형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논쟁 속 헝가리는 과거 어둠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자 메멘토파크를 설치해 조형물들을 옮겨와 전시했다.

 

 

프로파간다 목적에 충실하게 자극적이고, 과장되게 묘사되어 있다.
마치 무릎을 꿇고 있는 듯한 레닌동상과 누워있는 석상들

 

메멘토파크는 엄숙하면서도 한편으론 해학이 있는 듯 했다. 세상을 무섭게 경직시켰던 스탈린의 상은 잘려서 발만 남아있었다. 프로파간다를 위해 공격적이고 과장되게 만들어진 조형들은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다뉴브강 너머의 어부의 요새 야경
유대인 학살을 추모하는 조형물. 강가에 내버려진 듯한 신발들이 쓸쓸해보인다.

 

부다페스트 시내로 돌아와 모두가 극찬을 아끼지않는 다뉴브 강가의 부다 왕궁, 세체니 다리 그리고 국회의사당의 야경을 봤다. 주황빛 불빛에 취해 다뉴브 강가를 천천히 산책하는데 갑자기 강가에 신발들이 늘어선 조형물이 나타난다. 세계 2차대전, 유대인들을 학살할 때 다뉴브 강가로 데리고 와 신발을 벗도록 한 뒤 바로 총살을 했기 때문에 이를 기리기 위해 벗은 신발들을 조형물로 설치했다고 한다.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이 아니고 약간 어지럽게 놓여있는 데다 세월의 때가 묻어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맞은편의 화려한 부다 왕궁의 야경과 대비되어 더더욱. 지나간 아픈 역사의 감수성이 메멘토파크의 조형물과 함께 겹쳐져 속 쓰리게 다가왔다. 하지만 부다페스트는 그런 역사를 부정하지 않고 루인펍, 메멘토파크 같은 것들로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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