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여행, 신호등을 유심히 봐야하는 이유!

“물보다 맥주가 싸다더니 정말이야.”

물론 내가 고르는 맥주는 물보다 저렴하진 않았지만 독일은 진정 맥주의 천국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크래프트맥주 처럼 다양하진 않고 종류는 라거, 필스너와 바이젠 등으로 적었지만 기차를 타고 도시를 넘어갈 때마다 처음 보는 브랜드의 맥주가 대거 등장하곤 했다.

“이 브랜드도, 저 브랜드도 맛이 궁금하다. 아~ 하나만 사기엔 아쉬워~”

 

돈을 아낀다고 도시락을 싸다니면서도 다양한 맥주를 마셔보는 경험은 놓칠수 없었다. 기차 안에서도 계속되었던 맥주 시음회.

 

독일에선 어떤 도시를 가든 슈퍼마켓의 맥주 코너에만 가면 끊임없는 고민이 이어졌다. 그래, 또 언제 이렇게 와서 마셔보겠어! 라는 인생 한 번만 사는 하루살이처럼 우리는 다양한 브랜드의 맥주를 시도해봤다. 게다가 독일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와인병나발은 안불어도 맥주 한 캔쯤 손에 붙어있는 거마냥’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아 우리도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도 싸 온 도시락과 함께 맥주를 마시기도 했는데 로스토크(Rostock)에서 베를린(Berlin) 가는 길이 바로 그랬다.

 

 

베를린 거리 모습. 화창한 날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약간 차분한 느낌이었다.

 

베를린의 첫인상은 여태껏 방문한 다른 독일 도시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오가는 사람들도 많고 분주한데 경쾌한 느낌보다는 약간 차분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요 며칠간 길에서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북해의 한적한 도시들을 다녀왔더니 바쁘게 거리를 오가는 자동차, 철교를 지나가는 전철과 댕댕댕 울리며 지나가는 트램을 멍하니 보고 있는 시골쥐가 된 기분이었다.

베를린의 숙소는 주방과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안내를 받고 보니 일반 가정집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한 것이라 생각보다 아늑하고 깔끔했다. 무엇보다 방이 넓고 햇살이 잘 들어 매우 맘에 들었다. 작지만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테라스도 있고. 화장실이 공용인게 조금 불편한 정도? 하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게스트하우스라 크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볕이 잘 들던 베를린의 게스트하우스

 

무엇보다 숙소가 위치한 지역이 흥미로웠는데 프렌츠라우어 베르크(Prenzlauer Berg)라는 지역으로, 요즘엔 독특한 가게들도 많고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베를린이 동과 서로 나누어져 있었을 시기엔 동베를린에 속하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베를린 장벽(Berliner Mauer)이 무너져서 어디가 동베를린이고 서베를린인지 얼핏 봐선 알 수 없지만 묘하게 건물들이 투박하고 아파트가 많은 느낌이라면 동베를린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괜히 그런 소리를 듣고 숙소가 있는 동네를 산책하다 보니 유난히 벽에 낙서도 많은 것 같고, 그렇게 높지 않고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의 외양이 수수해 보이기도 했다.

 

 

장벽의 흔적으로 보이는 철골들이 줄지어있다.

 

길을 따라 중심가로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길의 왼쪽에 나란히 서 있는 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그 벽인가?’ 긴가민가하며 따라가다 보니 ‘베를린 장벽 방문자 센터(Visitor center of the Berlin Wall Memorial)’가 나왔으니, 길 옆의 벽은 베를린 장벽이 맞았다.

분단국가에 태어나 냉전을 겪으며 자라온 우리에겐 ‘무너진 베를린 장벽’이 주는 기분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가슴 뭉클하면서도 찌릿한 것이었다. 벽을 따라 쭉 걸으며 볼 수 있는 사진과 메시지들을 보며 과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먹먹해졌다.

 

 

베를린 장벽의 흔적
장벽의 대부분은 철거되었지만 몇몇 구간은 남겨서 전시되고 있다.
안내판 사진 중 히틀러 얼굴만 훼손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분노가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자유를 찾아 장벽을 넘다 끝내는 그 땅을 밟지 못한 사람들의 사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두꺼운 장벽을 망치로 부수며 환호하는 사람들의 사진과 현재는 골조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장벽이 과거와 현재를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건데- 이념으로 세워진 장벽을 무너뜨린 것은 자유를 향한 사람들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베를린 인기 숙소 확인하기!

 

 

동독과 공산주의의 상징이었던 트라비 자동차. 지금은 투어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서베를린 중에서도 미국쪽 관리구역에서 동베를린으로 갈 수 있었던 검문소, 체크포인트 찰리. 주변에 소련병사와 미국병사 복장을 한 사람들이 돈을 받고 사진을 함께 찍어주고 있었다.

 

독일에서도 베를린은 이래저래 세계 2차대전과 그로 인한 것들에 대한 색채가 유난히 짙은 도시였던 것 같다. 당장 도시 가운데를 가로질렀던 베를린 장벽의 흔적이 남아있고 동과 서의 검문소의 역할을 했던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슈프레 강에 둥둥 떠있는 ‘박물관 섬(Museumsinsel)’이라 불리는 섬의 폭격으로 새까맣게 얼룩진 베를린 돔(Berliner Dom)과 총알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국회 건물(Riechstag building)까지. 그 길에 끝엔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 Gate)이 있었다.

 

 

폭격 때문에 까맣게 변해버린 베를린 돔. 세계 2차대전 중 많이 부서진 것을 재건했다고 한다.
브란덴부르크 문. 너머로 너른 공원 따라가면 승전기념탑이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끼고 다시 장벽이 있었을 곳을 따라 걸어 포츠담광장(Potsdamer Platz)까지 가는 길목엔 직각의 회색빛 구조물들이 가득한데, 이것이 바로 홀로코스트 기념관(유대인 학살 추모 공원)이다. 약간 오목한 지형에 설치된 네모난 구조물들은 높이가 일정치는 않지만 안쪽으로 내려갈 수록 점점 높아지고 거대해진다. 중심부에 있으면 사방의 돌들이 나를 짓누를 것만 같은 위압감과 왠지 모를 삭막한 느낌을 받았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거대한 돌덩이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냉전 시대의 우울한 느낌만이 가득한 것 같은 베를린이지만 사실 베를린은 유럽에서도 클럽문화나 감각적인 디자인 등으로 요즘 소위 말해 ‘핫한 동네’라 그런지 곳곳에 눈길을 끄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많았다. 특히 ‘하케셔 마르크트(Hackescher Markt)’는 전쟁의 폭격 속에도 보존된 하케셔호프(Hackesche Höfe)라는 아르누보 양식의 예쁜 건물이 있었다. ‘호프(Höfe)’란 우리나라 말로 하면 ‘안마당(courtyard)’쯤이 되는데, 원래 이 쪽 지역이 유대인과 프랑스 이민자들이 살던 곳이었지만 독일 통일이 된 후 새롭게 정비하면서 지금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동베를린 지역이 우중충하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막상 다녀보니 오히려 개발되었고 새롭게 개발하는 중이라 그런지 볼거리도 많고 요즘 유행에 맞춘 상점, 레스토랑들이 많아 눈요기를 톡톡히 할 수 있었다.

 

 

하케셔 호프. 밤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 활기찬 모습이었다.
‘호프’가 안마당을 뜻한다고 하는데 이름답게 안마당이 아주 예쁜 장소였다. 여러개의 안마당이 서로 거미줄 처럼 연결되어 있어 탐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동독 시절의 신호등이었던 암펠만의 캐릭터용품을 파는 상점

 

또한 통일 독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여운 마스코트, 암펠만(Ampelmann) 캐릭터도 베를린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암펠만은 초록빛의 신호등맨인데, 동독 시절 사람들이 신호등을 무시하여 자꾸 사고가 나자 좀 더 눈에 띄는 신호등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생긴 캐릭터라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처음에 사람 모양으로 만들면서 주목을 위해 모자를 씌웠는데 모자가 자본주의의 상징 같다 하여 좀 더 평평하고 서민적인 모양으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렀는데 지금은 베를린 이곳 저곳에서 캐릭터화 되어 팔리고 있으니 그 어떤 것보다 자본주의스러울 수가 없다.

 

 

국회 건물. 내부는 미리 예약을 하면 볼 수 있다고 한다. 여기 역시 전쟁의 상흔이 건물 곳곳에 남아있었다.

 

베를린은 시내 곳곳에 현재와 과거가 잘 조화되어 녹아있었다. 웅장한 국회 건물만 해도 제국시대에 일반 백성들에게 위압감을 주려고 만든 건물이었다고 하지만 결국 국회 건물이 되며 시민들에게 돌아왔다. 건물의 가운데 있는 유리돔에서는 국회 안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관람은 미리 예약이 필요하다고 한다.) 건물의 정중앙으로 최상단에 위치한 전망대는 시민들이 국회의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위에서 지켜본다는 의미라고 한다. 시민들이 위에서 지켜본다니, 위압적인 통치의 상징이었던 건물이 시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볼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귀여운 신호등맨 암펠만도 동독 시절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베를린을 대표하는 마스코트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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