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여행, 여덟번째 이야기 – 붉은 하트의 도시 자그레브와 실연박물관

 

“크로아티아, 그 마지막 이야기”

 

두브로브니크, 코르출라, 흐바르, 스플리트, 자다르, 풀라를 비롯한 이스트라반도의 작은 도시들, 오파티야 그리고 자그레브.

크로아티아를 한 바퀴 도는 여정도 자그레브에 도착하자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오시예크라는 크로아티아 동쪽의 도시를 거쳐 세르비아로 갈 예정이다.

 

자그레브의 중앙역.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6시간 걸려 도착했던 자그레브 중앙역. 한밤중에 도착한 도시는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한 어둠뿐이었는데 막상 오시예크로 가는 기차표를 끊으러 와보니 허허벌판이라고 생각했던 중앙역 앞은 화사한 꽃이 가득한 광장이었고, 썰렁하고 크게만 느껴졌던 역사는 꽤 고풍스러운 양식의 건물이었다.

 

 

가족과 함께 삼삼오오 나온 사람들이 많았던 공원

 

중앙역에서 표를 끊고 반옐라치치 광장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중앙역 앞에 펼쳐진 너른 광장은 ‘즈리네바츠 공원’으로 주말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나와 휴식을 즐기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
아이들 좌석은 맨 앞, 세심한 배려가 보이는 공연

 

걸어가는 내내 우거진 녹음 사이로 피크닉 매트를 깔아두고 휴식을 취하는 가족,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까지 굉장히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반옐라치치 광장의 옐라치치 상

 

자그레브의 분위기는 지금까지 경험했던 크로아티아의 다른 도시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의 달마티아 지방이나 이스트라 지방은 고대 로마나 이탈리아의 어느 소도시 같은 분위기가 많이 났다면, 자그레브는 신기하게도 헝가리나 체코 같은 동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반옐라치치 광장에서 바라본 ‘자그레브 아이’ 가 있는 건물

 

반옐라치치 광장에서 보면 좀 생뚱맞게 현대식으로 거대한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 건물의 꼭대기에 ‘자그레브 아이 (Zagreb eye)’라는 전망대가 있다. 자그레브의 최고층 건물인데도 16층밖에 되지 않아 사실 그리 커 보이진 않지만 주변 건물들이 워낙 높지 않은 터라 자그레브 시내가 동서남북 사방으로 훤히 잘 보이고, 전망대에서 날이 좋으면 서쪽 너머의 슬로베니아까지 보인다고 한다.

 

 

자그레브 아이에서 바라본 반옐라치치 광장

 

올라가니 안전의 이유 때문인지 철창이 둘러진 공간이었는데 내려와서 전망대를 다시 올려다보니 전망대에서 자그레브 시내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마치 철망에 갇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운행거리가 66m, 64초가 소요되는 자그레브 케이블카

 

자그레브 시내는 북쪽으로는 약간 오르막이기 때문에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 수단으로 푸니쿨라(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다. 케이블카까지 이용하다니 경사가 급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만 이 케이블카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케이블카’로 운행 거리는 단 66m뿐이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데 64초가 걸리니, 올라타서 기념사진 두세 컷 찍으면 도착할 정도이다.

 

 

실연박물관의 입구

 

케이블카를 타고 내리면 정오마다 대포를 쏜다는 로트르슈차크 탑이 있고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자그레브에서 유명한 ‘성 마르카 교회’가 있는데, 그 중간에 ‘실연박물관(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이 있다. ‘실연’이라 하니 헤어진 연인과의 관계가 떠오르지만, 이 박물관에서의 ‘끊어진 인연’은 사람 사이 관계, 그 모든 것이다. 이 독특한 박물관은 자그레브에 살던 연인이 헤어지면서 둘만의 기념품들을 처리하다가 나온 아이디어라고 한다.

 

 

실연박물관의 사연들을 읽어보는 관람객

 

헤어짐을 준비하면서 컨테이너에 둘만의 사연이 담긴 물건들을 전시하고 자신들의 지인들을 초대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아이디어는 세계 각지에서 사연이 담긴 물건들을 받으면서 박물관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 제주도에서도 한 번 전시를 한 적 있었는데 소식을 뒤늦게 들어 가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실연박물관의 전시물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 물건의 사연이 적혀 있는 전시형태로 언뜻 보면 지루하지만 하나하나 사연이 독특해서 굉장히 재미있었다. 마치 물건 하나하나가 하나의 단편영화 같았다. 실연박물관은 ‘실연에 관한 단편선’ 모음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잠깐 만난 인연의 물건을 몇십 년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기증한 할머니의 사연, 어렸을 때 돌아가신 엄마가 준 장난감,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젊었을 때 입던 드레스… 헤어진 연인의 사연뿐만 아니라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가족과의 사연들도 있어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졌다. 

자그레브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빨간 하트 모양의 생강 쿠키인데, 이곳에 ‘실연박물관’이 있다니 이것 또한 또 하나의 독특한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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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의 상징, 자그레브 대성당
자그레브 대성당 내부
성 마르카 교회, 지붕의 모자이크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등을 상징하는 마크들이다.
대화재에도 불타지 않았다는 신비한 성모마리아의 그림. 소원을 비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케이블카를 타고 도착한 윗동네에는 ‘실연박물관’ 뿐만 아니라 대화재에도 멀쩡했다는 성모마리아의 벽화, 성 마르카 교회, 자그레브 대성당과 아침이면 여는 돌라츠 시장 등 관광으로 볼거리가 풍성하다.

 

 

카페가 가득한 트칼치체바 거리
가게의 2층 창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

 

게다가 저녁 시간이 되면 더욱더 북적이는 ‘트칼치체바 거리’도 있다. 거리가 온통 카페 겸 술집들로 가득 차 있는데, 밤이면 노천에도 촘촘한 테이블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공연을 즐기며 술 한잔 기울이는 곳이다.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트칼치체바 거리의 한 카페에 들어가 크로아티아의 맥주, 오쥬스코를 주문해 홀짝이며 지난 크로아티아 여행을 다시 한 번 추억해봤다. 아직 크로아티아의 문화가 익숙지 않아 굉장히 긴장했던 두브로브니크로 가던 야간버스 안, 친절한 사람들로 기분 좋았던 흐바르, 축제 덕분에 내내 들뜬 기분이었던 스플리트, 매일 저녁 환상적인 일몰을 선사했던 자다르 그리고 아기자기함이 즐거웠던 이스트라 여행… 마지막으로 붉은 하트의 도시 자그레브. 크로아티아의 모든 것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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