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여행, 여섯번째 이야기 –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호수따라 걸어볼까?

크르카 국립공원을 다녀오는데 진을 빼다 보니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굳이 어렵게 가지 않기로 했다. 숙소 주인이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언제든지 들러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 자다르 시내로 나가서 숙소 주인이 운영한다는 여행사를 찾아갔다.

시로카 대로에서 작은 골목으로 통하는 아저씨의 여행사의 벽면엔 플리트비체, 크르카 국립공원 사진 외에도 자다르 근처의 코르나티(KORNATI)라는 섬을 크루즈를 타고 돌아보는 프로그램 등 여러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자료가 붙어있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 아저씨가 운영하는 자다르의 투어 사무소

 

“와, 오랜만이예요. 지내는 데 불편함은 없나요?”
“네, 아주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우리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가는 여행 상품을 찾고 있는데 혹시 있나요?”
“플리트비체, 아주 좋지요. 그런데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크르카 국립공원을 좀 더 좋아해요. 크르카는 어때요?”
“사실 며칠 전에 크르카 국립공원을 다녀왔거든요. 그런데 버스를 타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버스가 오지 않아서 어렵게 택시를 타고 돌아왔어요.”

저런, 이라는 표정을 짓는 아저씨에게 그렇기 때문에 플리트비체로 가는 투어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고른 투어는 자다르에서 플리트비체까지 왕복 교통편만 제공되는 투어로, 공원 안은 우리가 자유롭게 돌아보면 되는 우리가 찾던 바로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자다르에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까지는 자동차로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짧은 거리는 아니기 때문에 우리처럼 당일치기 여행을 하기보다는 대부분 자그레브에서 내려오면서 플리트비체 인근의 작고 예쁜 마을인 ‘라스토케’를 들려 하루 숙박하거나 혹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근처의 호텔에서 숙박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우리는 차를 렌트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자다르에서 당일치기하기로 했지만 라스토케나 플리트비체 근처 숙소에서 하루 숙박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우리가 플리트비체까지 타고 갈 여행사 차량

 

오전 8시, 대개 이런 투어의 시작은 이른 아침이다. 미리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공원 안의 매점에서 판매하는 식사가 가격대비 시원찮다는 후기를 봤기 때문에 돈을 아낄 겸 전날 먹다 남은 피자를 포일로 포장하고, 혹시나 쉬어가는 포인트가 있으면 둘이 한잔할 요량으로 맥주 2캔도 배낭 안에 넣었다. 중간중간 수분을 보충해 줄 물병도 챙겨서 부지런히 약속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Hello!”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 청년은 우리가 예약한 투어의 운전사이자 가이드라고 했는데, 영어를 무척 잘하는 편이었다. 우리와 함께 투어를 하는 팀은 3팀 정도로, 우리가 가장 젊은 축에 끼었다.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크로아티아의 젊은 사람들은 대개 영어를 잘하길래 어떻게 영어를 잘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학창시절부터 영어를 엄청 강도 있게 배운다고 했다. ‘역시 저절로 되는 것은 없구나’를… 생각하며 자다 깨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앞에 도착해있었다.

 

 

자다르에서 플리트비체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로 시원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국립공원 앞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공원 사무실에서 티켓을 끊고, 가이드의 안내 아래 코스가 적혀있는 표지판 앞에 모두 옹기종기 모였다.

 

“공원에서 추천하는 루트는 이렇지만 제가 추천하는 방법은 일단 파노라믹 열차를 타고 위로 올라간 다음에, 내키는 루트를 따라 내려오시는 게 좋아요. 그래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알짜 정보예요. 쉿!”

원래는 위쪽과 아래 호수를 모두 조망할 수 있는 ‘C프로그램’을 따라 움직이려고 했는데 막상 도착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건 그냥 추천이고, 공원 내에서는 맘대로 움직여도 되는 모양이었다.

“지금이 오전 10시 30분이죠? 오후 4시까지 저쪽에 보이는 주차장으로 오시면 됩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호수를 따라 하이킹할 수 있는 프로그램 안내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지도를 보며 가이드가 쉽게 하이킹하는 법을 알려줬다. 지도는 입장권 뒷면에도 그려져있어 보기 편했다.

 

약 5시간 반의 시간.
‘C프로그램’ 자체가 4~6시간이 권장시간이라고 했으니 위와 아래 호수를 모두 돌아보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모양이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하고 들어갔지만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시간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넋을 잃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와-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작은 폭포가 여러 개 흘러드는 호수 가운데로 지나는 나무다리가 바로 눈 밑에, 펼쳐지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저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거지? 와… 진짜 예쁘다.”

 

 

공원 입구를 들어서 얼마 걸어가지 않아 보이는 풍경, 환상적이다.
아래 걸어가는 사람들이 요정같아 보이는 신비한 풍경

 

석회가 층층이 쌓여 생겼다는 플리트비체의 호수들은 정말 시간이 빚어낸 예술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흰빛 물보라, 에메랄드 호수빛과 바람에 부스러지는 나뭇잎의 초록빛은 시간과 자연의 협주곡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플리트비체는 이런 아름다운 자연 덕분에 1949년에 크로아티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7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플리트비체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공원 안의 산책로, 쓰레기통 등 모든 관리시설은 나무로 만들어져있었다. 게다가 2개의 지역에 걸쳐있을 정도로 넓은 지역이라 공원 구석구석을 보려면 3일은 걸린다고 한다. 우리가 당일치기로 보는 유명한 코스는 ‘호수 투어 프로그램’으로 사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일부분일 뿐이다.

 

 

눈으로 보면 더욱 멋있고 환상적인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풍경

 

이렇게 아름다운 플리트비체이지만, 크로아티아의 아픈 과거도 품고 있는 곳이다.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라는 연방 국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그 연방이 여러 나라로 쪼개지게 된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시발점이 바로 이곳, 플리트비체였다. 1990년대 초, 공산정권이 무너지면서 여러 나라의 민족주의가 끓어오르던 그때,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근무하던 경찰관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 일을 계기로 폭발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플리트비체 호수를 앞에 두고 어떻게 전쟁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지만 지나왔던 두브로브니크도 그렇고, 크로아티아 곳곳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전쟁의 상흔은 아직 남아있었다.

 

 

공원이 넓기 때문에 입구1과 입구2 사이에 ‘파노라믹 열차’를 운영하고 있다.
자연 친화적인 산책로, 나무로 만든 산책로 옆으로 물이 졸졸 흐른다.
어떻게 석회가 쌓여 호수를 이루는지 단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가이드의 조언에 따라 일단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가는 파노라마 열차를 타고 위쪽 호수 끝부분에 도달했다. 열차를 타고 내리니 짧은 구간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중간중간 우리가 어떤 프로그램을 따라 이동하고 있는지 안내해주는 이정표가 있었다. 위쪽 호수는 중간중간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하기도 했고 군데군데 작은 호수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날이 꽤 따뜻해져서 그런지 오래 걸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둘 다 금세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하지만 날이 더운 것도 더운 것이지만, 하이킹하는데 가장 큰 적은 바로 꽃가루와 날벌레!

“으악 진짜 꽃가루 때문에 숨을 못 쉬겠다!!”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답게 꽃가루는 계속 공기를 둥둥 떠다니고 물가 근처에만 가면 조그만 날벌레들이 윙-윙-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손을 좌우로 휘휘 저으면서 다녀도 역부족. 윗호수의 쉼터에 도착해서 점심으로 싸 온 피자와 맥주를 먹는데 내가 꽃가루를 먹는 것인지 밥을 먹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음, 오늘 점심은 꽃향기가 아주 향긋한 피자구먼.

 

 

꽃가루와 날벌레 때문에 제대로 먹기 힘들었던 점식식사, 그래도 크로아티아 대표 맥주 ‘오쥬스코’는 아주 맛있었다.
잔잔한 호숫가를 따라 산책을 했다. 사람이 많은 아래쪽 호수보단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었다.
호수에 비친 하늘, 어디가 하늘이고 호수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오리를 졸졸 따라오는 물고기들

 

아래로 내려오면서 호숫가를 따라 길게 걷는 코스가 나왔다. 어떤 구간은 물이 넘쳐서 찰박찰박 소리가 나기도 하고, 오리를 따라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도 만나고 아주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처음엔 H 코스를 따라 걷는 듯하더니 어느새 우리 앞에 이정표는 우리가 C 코스를 따라 걷고 있다고 나왔다. 위와 아래 호수를 모두 보려고 호수를 따라 걷다 보니 딱히 어떤 코스를 따라 걷는지는 중요치 않아졌다.

 

 

산책로 곳곳에 코스 안내 표지판이 있다.
산책로 사이로 힘차게 쏟아지는 작은 폭포들
에메랄드 빛 호수가 아름답다.

 

다시 위에서 아래로, 플리트비체에서 가장 큰, 아래쪽 호수를 배를 타고 가로질러 어느덧 시작점 근처로 돌아왔다.

“내가 알기론 좀 더 밑으로 내려가면 엄청 큰 폭포가 있대. 거기까지 다녀와 보자.”

 

 

‘Great Waterfall’, 물방울이 여기저기 튀어 눈을 뜨기 어려웠다.
입구1쪽으로 연결되는 동굴 계단, 약간 으스스한 느낌도 든다.

 

약간 시간이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되긴 했지만 길을 따라 좀 더 내려가 보기로 했다. 이쯤에 폭포가 있을까? 얼른 갔다 돌아와야 하는데…하는 걱정이 슬금하고 들 때쯤에, 시원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를 만날 수 있었다. 플리트비체에서 가장 큰 폭포답게 폭포 앞은 떨어지는 물보라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었다. 게다가 해가 바로 폭포 위에 있어서 더 눈을 뜨기 어려웠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이렇게나 큰 폭포를 즐기는 데 나쁘지 않았다. 큰 폭포를 향한 경외감을 느끼라는 자연의 배려였을까?

 

 

언제나 우리를 반겨주는 자다르의 석양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꾹꾹 눌러써 시간에 딱 맞춰 약속 장소로 돌아갔다. 약 5시간 정도를 계속 걸어 다녔더니 차에 타자마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오는 길엔 중간에 휴게소도 들르지 않아 두 시간 만에 자다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다르에 도착하니 어김없이 멋진 자다르의 석양이 우리를 포근하게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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