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여행, 다섯번째 이야기 – 일몰의 도시 자다르와 크르카 국립공원

‘자연이 주는 이 멋진 선물을 받기 위해 자다르에 들린다 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을거야’

“괜찮은 숙소는 비싸고, 아닌 숙소는 너무 외곽이고… 어쩌지?”
“외곽에 숙소를 잡으면 어떻게 다녀?”
“걸어서 다녀야 하나…”

숙소를 예약하면서 점차 크로아티아의 성수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관광지 주변이나 조금 외곽이라도 충분히 관광지까지 걸어갈 수 있는 꽤 괜찮은 숙소가 합리적인 가격에 있었는데, 이젠 좋은 위치의 숙소들은 점점 우리 예산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자다르 구시가지로 들어가기 위한 문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다르 숙소는 관광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잡을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숙소 주인이 버스터미널까지 마중을 나온다고 했다. 자다르의 버스터미널은 자그레브의 버스터미널만큼이나 큰 규모였는데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왠지 휑한 느낌이 들었다.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길 10여 분. 아무래도 아저씨에게서 연락도 없고 우릴 마중 나온 것 같은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는 언제 온대?”
“그러게, 전화 한 번 해봐야겠다.”

그때, 우리 근처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전화를 받았다. 엥? 여태 계속 같이 있었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우리 숙소 주인이었구나! 자다르 시내에서 관광사무소를 운영한다는 아저씨를 따라 졸졸 주차장으로 나갔는데 차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우디네.”
“나 이렇게 오래된 아우디는 또 처음 타봐.”

주행할 때 탈탈탈 소리가 나는 낡은 가죽 소파의 아우디. 자다르 시내도 아저씨의 낡은 아우디 자동차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우리 숙소가 있던 관광지가 모여있는 시내로 걸어가는 길은 반듯반듯한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지만 건물 안의 가게들은 영업을 안 한 지 꽤 오래된 듯했다. 도보의 블록도 군데군데 깨져 잔디가 듬성듬성 나 있었고. 크로아티아답게 반들반들한 대리석이 깔린 시로카 대로를 따라 난 거리의 상점들은 꽤 괜찮아 보였지만 약간 차분하게 느껴지는 것이 쓸쓸한 느낌마저 들었다.

 

 

로마시대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포럼 주변의 광장
로마시대 유적을 바로 옆에 두고 있는 카페

 

게다가 군데군데 아무렇지 않게 놓여있는 로마 유적으로 보이는 신전 기둥, 무너진 벽들이 황폐한 느낌을 더해 더욱 쓸쓸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자다르에 온 사람들이 꼭 보고 가는, 아니 이걸 보기 위해 자다르에 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법한 자다르의 석양, ‘태양에게 인사’와 바다 오르간의 소리를 들으러 바닷가로 나갔다.

웅-웅-우웅-웅-우웅
차륵, 처얼썩, 착, 차르륵

대리석 계단 아래에 설치된 35개의 파이프에 파도가 치면서 들어가는 공기 때문에 소리가 나는 ‘바다 오르간’. 때로는 낮은 음으로, 때로는 꺄르륵 웃는 아이들 웃음소리 같이 굴러가는 소리는 조용하게 흔들리는 파도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몇 분이고 바다를 바라보며 들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바다 오르간의 노래를 배경음악 삼아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

 

게다가 저 먼 수평선으로 서서히 다가오면서 주변을 불그스레 물들이는 석양은, 최고의 영화 엔딩을 보는 느낌이었다. 곧 대지가 까맣게 물들어가고 여태까지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엔딩크레딧 처럼 주르륵 올라갈 것만 같은, 그런. 하지만 그런 감상적인 기분이 되기 전 바다 오르간의 뒤편이 화려하게 물들어간다.

 

 

자다르의 석양을 향해 항해하는 요트
영화감독 히치콕이 최고의 석양이라 극찬한 자다르의 석양

 

바로 ‘태양에게 인사’라는 설치물인데, 한낮 내내 내리쬐는 태양의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있다가 해가 지기 시작하면 서서히 빛을 내기 시작한다. 바다 오르간과 태양에게 인사가 우리에게 한 편의 멋진 영화를 보여준 기분이었다. 자연이 주는 이 멋진 선물을 받기 위해 자다르를 들린다고 해도 전혀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해가 지고 나면 ‘태양에게 인사’가 빛나기 시작한다.

 

‘마치 요정의 산책길 같았던 크르카 국립공원에서의 우여곡절’

자다르에서 받은 또 다른 자연의 선물은 바로 ‘크르카 국립 공원(Krka National Park)’이다. 위치는 스플리트와 자다르의 중간쯤, 스크라딘(Skradin)이라는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돌아볼 수 있다. 원래는 스플리트에서 다녀올까 했는데 축제 구경하고 시간을 보내다보니 스플리트에선 가지 못하고 자다르에 와서나 방문할 수 있었다.

 

 

자다르 버스터미널, 창구에서 스크라딘으로 가는 티켓을 구매했다.

 

스플리트나 자다르에서 모두 크르카 국립공원을 가는 투어가 있었지만,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다고 하여 버스를 타고 가보기로 했다. 가는 방법을 찾아보니 자다르 버스 터미널에서 스크라딘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스크라딘에서 내리면 크르카 국립공원 사무소가 있어 그쪽에서 다시 배표를 사서 배를 타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다시 돌아오는 것도 꼼꼼하게 시간표를 체크하고, 스크라딘에서 내릴 때도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자다르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위치와 시간도 확인하고 내렸다.

 

 

스크라딘에서 크르카 국립공원을 연결하는 유람선
체험학습을 나온 어린이들

 

요정이 산다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만큼이나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크르카 국립공원. 플리트비체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크르카 국립공원의 장점은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로 호수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방문하기 전 크르카 국립공원 홈페이지를 확인했더니 아직 ‘수영 불가’라고 적혀있어서 하이킹이나 할 요량으로 갔다.

“뭐야, 사람들 수영하잖아!”

이런, 분명 수영 안 된다고 했는데. 제법 따뜻해진 날씨에 사람들은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고 내리쬐는 햇살 아래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아쉽지만 원래 하이킹에 좀 더 중점을 두기로 했으니까. 크르카 국립공원은 크르카 강(Krka River)과 치콜라 강(cikola River)를 끼고 있어 다양한 식생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리되었다고 한다. ‘크르카 국립공원’ 하면 대표적인 폭포나 우리가 하이킹으로 돌아볼 수 있는 구간은 크르카 국립공원의 일부분일 뿐이고 배를 타고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더 다양한 유적지나 식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호수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호수 주변에선 이렇게 일광욕을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크라딘으로 돌아갈 배 시간과 자다르로 돌아갈 버스 시간 등을 고려하면 호수를 한 바퀴 둘러보는 짧은 코스의 하이킹으로 만족해야 했다. 나무판자로 구성된 산책길은 자연 친화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다. 철제구조물이나 인공적인 구조물을 최소화한 것 같았다. 시원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하류의 폭포와 다르게 위로 올라갈수록 조용하게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배경 삼아 울창한 숲속을 걷고 있으니 나무 사이사이를 헤엄쳐 다니는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보기만 해도 힐링되는 기분!
요정의 산책길 같다.
사람들은 하이킹은 안하고 일광욕만 즐긴다.

 

만족스러운 하이킹을 마치고, 자다르로 돌아갈 버스를 탈 시간.

“분명 아까 아저씨가 여기라고 했는데.”
“그 버스 두브로브니크에서 스플리트 거쳐서 다시 자다르로 가는 버스라고 했어.”
“대체 왜 안 오는 거지?”

버스터미널이 아닌 간이 정류소에서 타는 거라 안 그래도 불안해서 버스 시간보다 훨씬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 시간이 지나도 버스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우리 외에도 다른 외국인들도 있었는데 다들 불안한지 연신 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하염없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자 동네 택시 아저씨가 지나가면서 택시를 타라고 했지만 일단 좀 더 기다려보자는 생각으로 타지 않겠다고 했다.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버스 노선도를 보고, 터미널에 전화를 해봐도 오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점차 해가 기울어가고,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오늘 안에 자다르로 못 돌아가는 건 아닐지,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 때, 우리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외국인들이 말을 걸었다.

“자다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거죠?”
“맞아요. 6시 30분 버스라고 했는데 버스가 오지 않네요.”
“우리 아까 택시를 찾아서 함께 자다르로 돌아갈래요?”

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우리 둘만 정류장에서 막연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정말 답답했을 거다. 다행히 우리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도 자다르로 돌아가는 사람들이었고 함께 택시를 타고 자다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까지 포함해 총 5명이었는데, 어찌저찌 좁은 뒷좌석에 4명이 낑겨앉아 우여곡절 끝에 자다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보니 더욱더 멋진 자다르의 일몰
환상적인 자다르의 일몰

 

아무 것도 없는 스크라딘에서 밤을 맞았다면 정말 끔찍할 일이었다. 자다르 구시가지로 연결하는 다리에서 봤던 일몰은 정말, 환상적이어서 잊을 수가 없었다. 영화감독 히치콕이 극찬 했다던 자다르의 일몰, 히치콕도 분명 자다르에서 무슨 우여곡절이 있었던게 분명하다. 그래서 최고로 아름다워 보였을지도.

 

자다르 인기 호텔 확인하기!

 


 

  • 크로아티아 여행, 다른 이야기 보기
크로아티아 여행, 첫번째 이야기 – 총성이 울리는 위험한 곳?
크로아티아 여행, 두번째 이야기 – 반짝반짝 빛나는,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여행, 세번째 이야기 –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흐바르
크로아티아 여행, 네번째 이야기 – 활기찬 축제의 도시, 스플리트
크로아티아 여행, 여섯번째 이야기 –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호수따라 걸어볼까?
크로아티아 여행, 일곱번째 이야기 – 이스트라를 즐기는 3가지 방법
크로아티아 여행, 여덟번째 이야기 – 붉은 하트의 도시 자그레브와 실연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