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여행, 네번째 이야기 – 활기찬 축제의 도시, 스플리트

해변 끝의 뾰족한 끝에서 기념사진 한 장. 가까이 갈 수록 뾰족한가?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흐바르에 대한 미련도 잠시, 화사하고 젊은이들로 가득찬 도시 스플리트!’

흐바르를 떠나 스플리트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언제나 그렇듯 안드로 아저씨의 어머니가 안부를 물어보고, 우리는 흐바르가 너무 즐거웠노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원래는 새벽같이 출발하는 배를 타고 스플리트로 갈 예정이었는데, 안드로 아저씨는 느즈막하게 배가 출발하는 스타리그라드까지 배웅을 해줄테니 굳이 새벽같이 출발하지 말라고 했다. 이런 아저씨의 배려 덕분에 흐바르가 더욱더 사랑스럽고, 온통 즐거운 기억으로 남은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한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갈 때엔 떠나는 도시에 남은 미련과 새로운 도시에 대한 기대감이 뒤범벅 되어 여러가지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다. 더더욱 흐바르 같이 좋은 기억으로 가득한 곳을 떠나갈 때엔.

‘스플리트는 어떤 도시일까? 흐바르만큼 괜찮을까? 별로면 어떡하지?’

두브로브니크로 향하던 야간버스가 잠시 쉬었다간 스플리트.
섬 앞으로 넓은 바다가 탁 트여 아름다움으로 가득찼던 흐바르와 달리 앞에 브라치 섬이 가로막고 있어 시원한 바다 풍경도 볼 수 없었고, 항구엔 큰 배만 가득 들어차있는 것이 왠지 복잡하고 어지러울 것만 같은 느낌이었는데.

 

크루즈선과 여객선, 그리고 관광선까지 여러 배가 드나드는 스플리트 항구

 

그런 걱정도 잠시, 크로아티아 제 2의 도시답게 두브로브니크나 흐바르 등지에선 보지 못했던 유명 브랜드와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들로 가득한 거리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옷! 옷 사고 싶다!”

변덕스러운 날씨의 4월도 이제 안녕,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문턱 앞에 날씨도 꽤 온화해지고 있었다. 견물생심이라더니 쇼윈도에 화사하게 걸린 옷들을 보니 우중충한 겨울옷들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배낭 안에 입을 옷도 없었고. 큰 도시라 그런지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화사했다. 지금까진 대부분 중년층의 아저씨, 아줌마들을 많이 마주쳤다면 스플리트엔 젊은이들이 길거리에 넘쳐나 도시에 활기찬 느낌이 가득했다.

 

 

지금까지 지나온 도시와 달리 젊은 사람들도 많고 세련된 사람들도 많았다.
유명 브랜드부터 로컬 브랜드까지 여러 상점이 모여있던 거리

 

“오늘 밤엔 불꽃놀이가 있을 예정이예요.”

우리 방 맞은 편에 살고 있던 주인 마르코 아저씨가 오늘 밤, 불꽃놀이가 있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불꽃놀이? 불꽃놀이 너무 좋지!
근데 왠 불꽃놀이인가 싶어 스플리트 관관청 사이트를 들어가봤더니 우리가 머문 시기가 우연찮게도 ‘성 도미니우스 축제(Saint Domnius Day)’와 겹쳐있었다. 알고서 이 시기에 온 것이 아닌데 축제기간이라니, 완전 땡잡은 느낌.

 

 

제법 큰 규모의 가설무대가 리바거리에 세워지고 있었다.

 

어쩐지 리바거리엔 왠 가설무대도 세워지고 있었고 (처음엔 방송국 공개방송이라도 하는 줄) 기념품이나 특산품을 파는 시장도 들어섰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풍선이며 솜사탕, 팝콘까지 팔고 있는 것을 보니 대단히 큰 축제인 모양이었다.

 

 

리바거리엔 노점과 사람들이 북적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솜사탕 노점

 

그러고보니 열주광장에서 보이는 큰 첨탑이 있던 성당 이름이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이었지. 겸사겸사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의 첨탑 위로 올라가 스플리트를 내려다보기로 했다. 첨탑 안은 의외로 뻥 뚫려있고 내벽을 따라 아슬아슬해보이는 좁은 계단이 타고 올라가, 맨 위의 전망대에서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구조였다. 수십년은 지났음직한 아슬아슬한 철제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길은 등 뒤로 식은땀이 찔끔하고 타고 내려갈 정도였다.

 

 

열주광장에서 보이는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의 첨탑
아슬아슬해보이는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스플리트 시내

 

아슬아슬한 공포를 이겨내고 올라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스플리트 시내의 모습은 여전히 활기차고 분주했다. 들썩들썩한 축제 분위기는 공기를 타고 위까지 전달되는 듯 했다.

 

 

전통의상을 입고 무대를 준비하는 청년들
각 지역의 전통의상을 입고 전통무용과 노래를 선보였다.

 

축제는 주말을 따라 몇 일간 이어졌다. 매일 밤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신나게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이 어우러져 스플리트는 정말 활기찬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사람이 북적이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우리도 매일 밤 들뜬 기분이 되었다.

 

 

늦은 시각에도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
수동으로 돌리는 놀이기구지만 아이들이 아주 즐거워하며 타고 있었다.
리바거리의 노점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들
열주광장의 룩소르 카페. 자리에 앉지 않아도 공연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동그란 자갈들이 파도가 칠 때마다 또르륵…’

하루는 스플리트 앞에 커다랗게 보이는 브라치(Brac)섬에 다녀오기로 했다. 브라치 섬에는 흐바르의 다미르 아저씨가 알려준 독특한 장소가 있는데, 바로 ‘금빛 뿔(Golden horn)’이라 불리는 ‘즐라트니 랫(Zlatni Rat)’이란 해변이 있다. 현지인들이 휴양을 즐기러 많이들 가는 장소라고 했다. 조약돌 해변으로 바람에 따라 조약돌이 이리저리 움직여서 때에 따라 모습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바다를 향해 뾰족하게 뿔처럼 나있는 해변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브라치로 향하는 배 안에서 보이는 스플리트
해변 산책로를 따라 즐비한 기념품 노점에서 판매하는 대리석 기념품

 

스플리트 항구에서 브라치 섬의 슈페타르(Supetar)까지 배를 타고 가서 다시 볼(Bol)까지 버스를 타면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다음엔 즐라트니 랫까지 이어진 해변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듯 걸어가면 되는데, 산책로를 따라 기념품 노점들이 즐비했다. 중간중간 대리석 공예품을 파는 곳들도 있었는데 알고보니 브라치 섬은 대리석이 유명해 유명 건축에 많이 쓰였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백악관이라고 한다.

 

 

저 멀리 보이는 뾰족한 즐라트니 랫(Zlatni Rat) 해변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건너편에 보이는 섬은 우리가 얼마전까지 머물렀던 흐바르 섬이다.

 

해변엔 대리석만큼 맨질맨질 동그란 자갈들이 가득했다. 파도가 칠 때마다 또르륵, 또르륵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해변의 카페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고 성수기는 아니라 붐비지 않아 소란스럽지 않고 평화로왔다. 발바닥으로 동그란 자갈을 한껏 느끼며 바다에 발을 담가보았는데, 해수욕을 할 날씨는 아니라 바닷물은 차가웠지만 마치 유리상자 안에 들어간 것 처럼 물에 담근 발이 훤히 내다보일 정도로 물이 맑았다.

 

 

해변 끝의 뾰족한 끝에서 기념사진 한 장. 가까이 갈 수록 뾰족한가?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듯한 느낌. 거센 바닷바람이 느껴진다.
맑디 맑은 크로아티아의 바닷물

 

다시 버스와 배를 타고 스플리트로 돌아와 마르코 아저씨가 추천해준 식당을 가보기로 했다. 여기저기 인터넷에 유명한 맛집들도 있었지만 마르코 아저씨가 이 레스토랑은 진짜 맛있다고 강추를 해준데다 자신의 가족도 자주 가서 식사를 하는 곳이라 하기에 흥미가 생겼다. 돈을 아끼는 것도 아끼는 것이지만 먹을 것을 좋아하는 우리는 돈은 아끼더라도 한 도시에서 괜찮은 레스토랑은 꼭 한 번이라도 가보기로 하기도 했고.

스플리트의 리바거리를 살짝 벗어난 작은 골목 사이 감춰진 레스토랑이었는데, 마르코 아저씨의 말을 듣고 미리 답사를 해둔터라 길은 헤매지 않았다. 하지만 오픈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갔는데도 이미 저녁 먹을만한 시간은 만석이어서 저녁 9시에나 식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9시에 예약을 걸어두고 시간에 맞춰 레스토랑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자리가 나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는 우리더러 음료라도 먼저 마시지 않겠냐고 해서 기분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스플리트에서 또 언제 외식을 하겠냐 싶어 야외 자리에 앉아 먼저 와인과 맥주를 한 잔 했다.

 

 

식전에 크로아티아 산 와인과 맥주로 쨘!
식당에서 먹은 싱싱한 크로아티아 산 해산물. 이 중에서 먹고 싶은걸 고르면 g당 가격으로 매겨서 조리해준다.
정겹고 아늑했던 분위기의 레스토랑

 

은은한 조명과 북적이는 레스토랑 안의 분위기에 곧 먹게될 음식에 대한 기대가 고조될 찰나 우리 자리 가까이 앉은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지 힐끗힐끗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디에서 왔니?”
“우리는 한국에서 왔어요.”
“여행하는 중이니? 앞으로 어디로 갈 예정이야?”
“앞으로 자다르를 거쳐 이스트리아 반도를 여행하고 자그레브로 갈 거예요.”

할아버지는 우리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지금 너희가 여행하는 이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니?”

이 곳? 여행 오면서 행선지를 모르고 오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당연히 우리는 이 곳이 크로아티아, 스플리트라고 대답했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야. 우리가 있는 곳은 크로아티아가 아니란다. 바로 달마티아 지역이지. 이천년 전부터 이 곳은 달마티아 였고, 너희가 앞으로 갈 이스트리아 지역은 2차 대전 이전까진 이탈리아의 영토였지만 우리는 계속 달마티아로서의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살아왔단다.”

 

 

고대 도시의 골목길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

 

항상 어떤 나라를 여행할 때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기 위해 최대한 알아보고 공부하고 간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이방인으로서 알기가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이 지역이 ‘달마티아’라는 지방으로 구분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미 ‘크로아티아’라는 같은 나라인데도 민족과 문화로 구분을 하다니. 스플리트가 속한 달마티아 지방은 고유의 문화와 언어가 있었지만 여러 나라의 지배와 문화 획일화 정책을 통해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하면서 ‘달마티아’ 사람들로서의 긍지, 그리고 다시 문화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도 곳곳에서 엿보이기도 했다.

 

 

기념품 상점의 크로아티아 기념품

 

우리나라처럼 ‘한민족 한국가’라는 이념아래 오래 살아온 나에게 오랜기간 인접국가와의 전쟁, 내전이 있었던 유럽의 과거와 이어진 삶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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