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여행, 세번째 이야기 –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흐바르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던 흐바르, 그것은 사랑스러운 사람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오늘은 바다에서 수영 했니?”
“아니요. 아직 춥잖아요!”

안드로 아저씨의 어머니는 우리를 볼 때마다 바다에서 수영을 했냐고 물어봤다. 이른 봄이어서 수영을 할 날씨는 아니었지만 오며가며 마주치는 우리를 볼 때마다 꼭 한마디씩 말을 걸어주는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오늘은 뭐하니, 오늘은 날씨가 좋네. 우리가 크로아티아 말을 모르기에 영어로 밖에 대화가 통하지 않았는데도 짧은 영어로 우리의 안부를 물어봤다.

 

 

흐바르에 도착한 첫 날, 새벽 6시배를 타고 아침 일찍 도착했다. 반짝이는 에메랄드 빛 바다와 보랏빛 라벤더가 살랑이는 풍경을 기대했지만 흐린 날씨에 문닫은 상점들 앞으로 회색빛 파도만 철썩였다. 두브로브니크 다음 방문한 코르출라는 비성수기라 문닫은 상점만 잔뜩 보고 온 터라 흐바르에 대한 기대로 가득찬 상태였다. 하지만 흐바르 역시 한가한 모습이었다.

“아… 여기도 비성수기라 이래? 역시 두브로브니크를 맨 마지막에 갈걸 그랬나봐.”

 

무르익는 봄을 기대했건만 날씨마저 다시 쌀쌀해져서 가방 깊숙히 집어넣은 바람막이도 다시 꺼내야했다. 흐바르의 회색빛 풍경에 마음이 쓸쓸해지려는 찰나, 새벽같이 도착한 우리를 위해 항구로 예약한 숙소 주인인 안드로 아저씨가 마중을 나왔다. 아침 일찍 코르출라에서 페리를 타고 도착한다고 했더니 갈 곳 없는 우리를 위해 신경써서 체크인을 일찍 해준 것이다. 안드로 아저씨 덕분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흐바르 시내를 한바퀴 돌아봤다. 비성수기라 닫은건지 어쩐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그만 시내 안의 상점들은 영업하는 곳이 별로 없었다. 집에 오는 길의 슈퍼마켓 콘줌 하나, 푸줏간 하나가 영업을 하고 있었을 뿐.

 

 

남편의 기억 속, 가장 인상깊었던 흐바르의 포인트는 ‘맛있는 소고기’

 

에라 모르겠다. 밥이나 맛있게 배부르게 먹고 나중에 생각해보자 하고 푸줏간에서 소고기 한덩어리를 사서 스테이크를 구워먹었다. 나중에 남편에게 ‘흐바르 하면 뭐가 기억나?’ 하고 물어봤더니 스테이크 해먹었던 고기가 참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고 하더라. 흐바르, 푸줏간의 고기가 맛있는 섬. 그리고 사람들이 친절하고 따뜻했던 섬.

우리가 머무른 숙소는 안드로 아저씨의 가족이 운영하는 아파트먼트였는데, 시내 관광지에선 조금 떨어져있었지만 오며가며 덕분에 풍경 구경을 할 수 있었고 알뜰살뜰 우리를 챙겨주는 따뜻한 안드로 아저씨의 가족이 있었다. 저녁마다 함께 먹으라며 직접 만든 디저트와 술을 올려보내주셨고 아침마다 우리의 안부를 물었다.

 

 

손수 만든 느낌이 푸근하니 좋았던 달콤하고 맛있었던 디저트

 

다행히 흐바르의 날씨는 곧 좋아졌다. 매일 반짝이는 푸른색으로 넘실대는 바다를 옆에 끼고 산책하는 일상이 너무 행복했다. 비성수기라 닫은줄로만 알았던 상점들도 날이 좋아지니 테이블과 의자를 광장에 깔아놓고, 그동안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관광객들도 삼삼오오 나와서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요트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한 잔 기울이는 사람들
봄을 온몸으로 반기고 있는 사람들. 우리도 함께 껴서 일광욕을 즐겨보았다.

 

‘블루케이브… 왜 이제야 알았지? 그렇다면 안가볼 수 없지!’

흐바르 시내는 자그마해서 사실 반나절이면 걸어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흐바르 시내를 벗어나 섬의 다른 곳을 가볼까하고 시내 투어업체들이 거리에 내놓은 홍보자료들을 찬찬히 훑어봤는데 대부분 ‘블루케이브(Blue Cave)’라는 곳을 가는 투어가 꼭 하나씩은 들어있었다.

블루케이브?

그제서야 검색해보니 흐바르 섬에 오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이 블루케이브를 보기 위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였다. 앗차, 우리는 왜 이제서야 알았지? 정보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왔다. 그제서야 서둘러 알아보니 이탈리아 카프리의 푸른동굴(Grotta Azzurra)와 많이 비슷한데 한결 관광하기에 편해 흐바르에서 블루케이브를 다녀오는 것을 추천했다. 그렇다면 안가볼 수가 없지!

 

 

블루케이브에 들어가는 티켓

 

일단 블루케이브는 흐바르에서 좀 떨어진 ‘비세보(Bicevo)’라는 섬에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방문하는 것보단 투어로 가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인 것 같았다. 여러 업체를 돌아다니며 투어 프로그램과 가격을 문의해보다 아드리아나 호텔 근처에 있는 투어업체에 홀리듯이 들어가 블루케이브를 가는 투어를 문의했다. 자신을 다미르라고 소개한 사장님은 블루케이브를 포함한 3개의 동굴을 가는 투어를 추천했고, 지금까지는 해상 날씨가 블루케이브를 구경하기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바로 내일이 올해의 첫 블루케이브 투어를 가는 날이라며 우리보고 운이 좋다고 했다. 다미르는 바람의 방향, 파도의 높이 등 전문적인 정보를 보여주며 내일 투어를 하지 않겠냐고 권했지만 우리가 검색한 내일의 날씨는 흐림으로 투어를 하기에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내일 흐바르 시내를 벗어나 섬 반대편의 스타리 그라드(Stari Grad)라는 마을을 가볼까 계획하고 있었고. 이렇게 당장 내일 블루케이브를 간다고…?

 

흐린 날씨에 바다로 나간다니. 괜찮은건가 싶었지만 여러 자료를 보여주며 정성껏 설명해주는 다미르가 이전까지 방문했던 투어업체의 직원들과는 다른 느낌에 예약금을 걸고 블루케이브를 포함한 3개의 동굴 투어를 예약했다.

투어 당일 아침. 아니나 다를까 예보처럼 날이 흐리고 심지어 비까지 뿌리고 있었다!

“예보대로네. 이런 날씨에 투어를 한다고? 투어 취소 되는거 아냐? 연락온 것은 없어?”
“일단 그래도 예약을 했으니 장소엔 나가보자. 그리고 상황을 봐야지.”

 

비가 오고 있어 너무 걱정되었지만 일단 약속 장소에 나갔다. 우리를 포함해 함께 투어를 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초조하게 하늘을 보며 다미르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약속시간이 지나도 다미르는 오지 않았다. 게다가 투어를 계약했던 사무실은 굳게 닫혀있기 까지.

“뭐야, 혹시 우리 속은 것 아냐??”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는 다미르에 불안함이 슬그머니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다미르는 늦었지만 그 전날 우리에게 보여준 자료 속에 있던 것과 똑같은 작은 배를 끌고 나타났다. 우리는 사진을 봐서 작은 배로 여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은 아니었나보다. 함께 여행을 할 다른 커플 중 여성이 이렇게 작은배는 무서워서 타고 갈 수 없다며 흐바르를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항구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하긴 배도 엄청 작은데 날까지 흐리고 비까지 흩뿌리니 나도 좀 걱정이 되긴 되던 차였다. 설마 항구로 돌아가는 건가…?했는데 다미르와 남자친구의 설득으로 일단 배를 타고 여행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계속 불안해하는 것 같기는 한데.

 

 

넓은 바다 위에 우리가 탄 배가 조금 많이 조그맣기는 하다.

 

흐바르에서 그린케이브, 블루케이브가 있는 비세보와 비스 섬으로 가는 도중에 다행히 하늘은 아주 맑게 개었다. 그리고 다미르의 설명처럼 파도가 높지 않아 멀미도 전혀 없었고, 잔잔한 호수 위에 나룻배를 타고 둥둥 떠있는 것만 같았다. 블루케이브는 생각보다 더 환상적이었다. 조그만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이 동굴 안에 가득차며 푸른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동굴 안은 세상의 빛이 푸른색 외에는 남지 않은 것처럼 정말 푸르렀다.

보통 이렇게 투어를 하면서 좋은 포인트가 나오면 수영도 하고 그런다는데 우리는 아직 날이 추워 수영을 할 순 없었지만 비세보 섬에서 다미르의 친구가 직접 담근 포도주를 대접해주기도 했다. 처음엔 흐렸지만 아주 맑아진 날씨,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블루케이브 진입 등 어제 다미르가 설명한 것 그대로 진행되고 있어서 다미르가 정말 베테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미르, 아침에 조금 늦었다고 의심한 것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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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케이브에 들어가는 구멍은 아주 조그맣기 때문에 파도가 조금 높은 날이면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뱃사공도 벽을 짚으며 간신히 방향을 잡는다.
푸른색 밖에 남지 않은 블루케이브의 안. 눈으로 본 만큼 사진에 담기지 않는다.
중간에 들른 비세보 섬의 조그만 마을. 파란 바다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우리가 타고온 배. 조그맣지만 안전했다.

 

‘하하, 오늘은 스타리 그라드에 다녀왔어요!’

게다가 사무실에 도착해 잔금을 치르는데 다미르가 대뜸 ‘내일 스타리 그라드가는데 같이 갈래?’하고 물어봤다. 우리가 어제 원래 오늘은 스타리 그라드에 갈 것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내일 친구가 스타리 그라드에 오는데 데리러 가는 김에 우리를 내려주겠다고. 안그래도 흐바르 시내에서 스타리 그라드 까지 다니는 버스가 자주있는 편이 아니라 걱정했는데 다미르 덕분에 아주 편하게 왕복할 수 있었다. 우리를 오전에 스타리 그라드에 내려주면서 흐바르로 돌아갈 때는 뷰포인트가 좋은 도로가 있으니 꼭 그 쪽으로 돌아가자고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다미르 덕분에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옛도로를 타고 전망을 구경했다.
옛도로에서 바라본 흐바르 섬 맞은 편의 브라치 섬

 

하지만 우리를 다시 데리러왔을 때 알고보니 오늘 오기로 한 친구가 못와서 일부러 우리를 데리러 다시 여기까지 왔길래 굳이 전망이 좋은 도로로 돌아가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다미르는 우리가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빠른 도로를 타지 않고 전망이 좋은 산길도로로 돌아서 흐바르 섬 너머 보이는 브라치섬도 보여주고, 흐바르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그저 다미르의 투어를 한 번 이용했을 뿐인데 우리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이런 수고스러움을 감수해가면서까지 대해주는 마음이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안드로 아저씨, 다미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잠깐 들렀던 스타리 그라드에서도 즐거운 인연이 있었다. 마침 노동절이어서 행사가 있는 모양이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광장에 모여 카네이션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있었다. 관광객의 호기심에 뭐하나, 하고 힐끗힐끗 거리니까 그 마을의 제일 어르신 처럼 보이는 양복을 말끔하게 빼입은 노신사가 우리에게 와서 음식을 함께 먹자고 권했다. 조금 망설이다가 크로아티아의 음식도 맛을 보고 싶어 스튜를 받아 둘이서 한 접시를 나누어 먹고 있으려니 또 노신사가 다가와 디저트도 한접시를 주고 갔다. 음식을 나눠주던 아주머니는 커다란 들통에서 화이트 와인 한 잔, 레드 와인 한 잔씩을 주고 가셨고. 음식을 먹고 떠날 때 노신사에게 인사를 했는데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잠시나마 우리가 관광객이 아닌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음식을 나누고 있는 마을 사람들
우리도 나누어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아이들이 바닥에 분필로 귀엽게 그려놓은 낙서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아이들의 귀여운 낙서

 

“다녀왔어요!”
“오늘은 바다에서 수영했어요?”
“하하, 오늘은 스타리 그라드에 다녀왔어요. 자전거도 타고 너무 좋았어요!”

돌아오면, 마당에서 빨래를 걷으며 우리를 향해 여전히 바다에서 수영 했냐고 물어보는 안드로 아저씨의 어머니가 반겨주고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지는 노을을 보며 안드로 아저씨가 올려준 디저트와 직접 담근 술을 홀짝이며 사랑스러운 흐바르의 밤을 맞이하곤 했다.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던 흐바르, 그것은 사랑스러운 사람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안드로 아저씨의 가족이 만든 디저트. 노을을 즐기며 먹기에 제격이었다.
훌륭한 오션뷰였던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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