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거트만 있는 게 아니야, 발칸반도의 붉은 장미 불가리아 여행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의 거리 풍경

이름도 예쁜 도시, 불가리아 소피아

세르비아 남쪽의 도시, 니슈(Niš)에서 탄 불가리아 소피아(Sofia)행 버스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짐 값을 받지 않았다.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에서는 버스에서 짐 값을 꼭 따로 받았기 때문에 버스 자리에 앉기까지 ‘짐 값 안 받는대? 왜 안 받는대? 진짜 안 받는대?’하고 재차 확인했다.

불가리아 소피아로 넘어가는 버스 안은 배낭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이 꽉 들어차 너도나도 버스 안에서 와이파이가 되는지 물어봤다. 누군가 핸드폰을 하고 있으면 ‘혹시 와이파이가 되니?’ 버스에서 내렸다 탈 때에도 ‘아저씨, 와이파이 되나요?’

세르비아에서 불가리아로 넘어가는 육로 국경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아직 EU 회원국이 아닌 세르비아와 달리 불가리아는 EU로의 관문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난민 문제로 유럽이 시끌시끌해 그런지 조금만 수상해 보이면 경찰들이 차의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 모든 짐을 확인하고 있었다.

 

소피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 니슈의 버스 터미널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국경 검문소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다시 버스에 타면 된다고 기사가 알려줬다. 차례를 기다려 내가 먼저 심사를 통과한 뒤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이상하다? 이렇게 길어질 일이 아닌데.

크로아티아에서 세르비아 국경을 넘을 때에도 남편 여권만 따로 심사관이 오래 보던 것이 기억나서 혹시 여권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우리가 뭔가 위반한 것이 있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항상 신경 써서 계산했는데 우리가 체류일수를 잘 못 계산했나? 나는 통과했는데 남편은 통과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별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남편이 여권을 들고 입국심사를 통과하는 것이 보였다.

“왜 그래? 뭐가 문제였어? 시간이 엄청 걸려서 걱정했잖아.”
“여권 사진과 지금 내 얼굴이 너무 달라서 본인인지 확인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

순간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한창 파릇파릇하고 날씬하던 학생 때 찍은 여권 사진과 회사 다니며 불어버린 지금의 얼굴이 너무 달랐으니 심사관이 의심했던 모양이다.

“하긴, 우리 엄마도 보고 놀랐는데. 입국심사관이 보고 얼마나 놀랬겠어.”

그렇게 다행히도 해프닝으로 끝난 불가리아 국경을 넘어 드디어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도착했다. 국경을 넘자마자 한 시간이 더 추가되어, 밤 10시나 되어야 울긋불긋 해가 산 너머로 내려갔다. 해가 길어서 그런지 밤늦게까지 거리에 나와있는 사람들도 많아 좀 울퉁불퉁해 보여도 불가리아의 첫인상은 밝고 명랑한 느낌이 들었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의 거리 풍경

 

불가리아의 수도인 소피아는 역사가 오래된 도시로 시내 곳곳에 고대 유적이 남아있었다. ‘소피아’란 이름 역시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딸인 소피아가 요양차 이곳에 와서 온천을 즐겼는데 병이 나아서 받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이처럼 불가리아 곳곳에는 효능이 좋다는 온천들이 산재해있고, 온천욕도 발달한 편이다. 소피아 시내에도 사람들이 물을 길어다 마실 수 있게 만든 약수터가 있었다.

 

 

위장병과 류머티즘에 좋다고 하는 약수를 길어가는 시민들
비토샤 거리의 풍경. 카페와 레스토랑이 거리 양 옆에 즐비하다.

 

소피아 관광의 핵심은 비토샤 거리(Bul. Vitosha) 주변에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한 사자가 지키고 있는 사자의 다리(Lion’s Bridge)를 지나 대로를 걷다 보면 오른쪽 길로는 유대교회당(Synagogue)이 보이고 맞은편엔 바냐 바시 모스크(Banya Bashi Mosque)가 보인다. 이 모스크 뒤편으로 가면 위장병과 류머티즘에 효험이 좋다는 물이 나오는 약수터(온천)가 나온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성 소피아 동상
소피아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그리고 계속 대로를 따라 걸으면 황금으로 빛나는 거대한 소피아 동상이 나오고, 소피아의 옛 지명 ‘세르디카’의 이름을 딴 지하철역이 나오는데 이 역의 동쪽 편으로는 고급 호텔, 국립은행, 국립극장부터 로마시대 극장과 소피아에서 가장 유명한 ‘소피아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조금 작지만 이 도시명의 유래가 된 소피아 성녀에게 봉헌된 ‘성 소피아 교회’도 함께 있다. 사자의 다리부터 비토샤 거리까지 가는 길에 유대교회당, 모스크, 고대 로마 유적, 가톨릭교회, 정교회 성당까지 모두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고대 로마시대, 오스만제국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불가리아의 역사가 이 짧은 거리 안에 흐르고 있는 것 같달까.

 

 

소피아 근교의 릴라 수도원

 

소피아 여행만으로 부족하다면? 소피아에서 근교 여행으로 다녀오면 좋은 곳이 하나 있다. 바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릴라 수도원(Rila Monastery)’. 산속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이곳에서는 불가리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 정신을 경험할 수 있다.

 

 

수도원은 릴라 산 속, 첩첩산중에 있다.

 

 

이 수도원은 10세기 초반에 지어져 불가리아 국민들의 문화적, 정신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4세기에 오스만 제국에게 침입을 받아 황폐해지고 종교탄압을 받았지만 그런 암흑시기에도 불가리아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했다고 한다.

 

 

만화같은 수도원의 벽화

 

정교회의 수도원답게 흔히 가톨릭교회에서 볼 수 있는 성상은 없었지만 온통 벽이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되어 있었다. 종교적인 내용들로 가득 찬 벽화는 언어를 몰라도 대략 이해할 수 있게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는데, 그 구성이 꼭 만화책을 보는 것 같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가득 찬 플로브디프와 벨리코 터르노보

불가리아에서 돌아볼만한 도시는 많이 있지만 일정이 촉박해 몇 군데만 선택해야 한다고 하면 수도인 소피아와 더불어 ‘플로브디프(Plovdiv)’와 ‘벨리코 터르노보(Veliko Tarnovo)’ 두 도시를 추천하고 싶다.

불가리아 제2의 도시인 플로브디프는 ‘일곱 개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로, 그 기원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의 ‘필리포폴리스’에서 왔다고 한다. 2019년엔 이탈리아의 마테라와 더불어 ‘유럽 문화수도’로도 지정되었는데 그만큼 도시에 고대 유적들이 산재해있었다.

 

플로브디프의 시내 중심, 로마시대 경기장 유적의 일부

 

로마 시대 사람들은 건축물을 어찌나 튼튼히 만들었는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불가리아를 여행하면서 고대 로마시대의 건축물이 없는 곳이 없지만 플로브디프는 그중에서도 꽤나 번성하여 유적이 잘 보존된 도시로 고대 극장, 경기장, 오데온은 물론이고 도서관이며 고대 주택까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로마시대 극장

 

특히 물 공급 시스템과 하수관이 있었고, 불가리아에서는 유일하게 고대의 물공급 시스템이 개발되었던 도시라고 한다. 플로브디프 시내 중심엔 이런 고대 로마 유적과 함께 현대 건물들이 어우러져 있어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도 든다.

 

 

플로브디프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성벽

 

‘일곱 개의 언덕’이 있다는 도시 이름처럼 플로브디프엔 완만한 구릉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올드시티에서 이어져 옛 성벽 위에서 플로브디프 시내를 내려다볼 수도 있다. 올드시티 구역은 오스만제국 지배 시기에 만들어진 구역으로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올드시티의 골목, 2층이 튀어나와있는 형태의 건물이 많다.
민족학 박물관. 1847년에 지어졌는지, 건물 정면에 연도 표기가 있다.

 

간혹 불가리아 전통복장을 하고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할아버지도 있고 골목 어귀엔 사라고 내버려 둔건지, 구경하라고 내버려 둔건지 알 수 없는 전통 식기들도 있었다.

안 그래도 좁은 골목을 더 복작복작하게 느껴지게 건물의 2층이 튀어나와 하늘을 가리고 있었는데 유래를 알고 보니 오스만제국 시절에 건물의 1층 면적으로 세금을 메기던 것에 꼼수로 2층을 살짝 튀어나오게 지은 것이라고 한다.

 

 

얀트라 강이 굽이치는 계곡 사이의 도시, 벨리코 터르노보

 

고대 로마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도시, 플로브디프와 달리 벨리코 터르노보(Veliko Tarnovo)는 얀트라(Yantra)강변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차를 타고 벨리코 터르노보를 향해 가는데 쭉 뻗은 도로가 별안간 산속으로 들어가는 듯 싶더니, 몇 개의 터널이 나타나고 갑자기 터널 위로 천공의 도시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계곡 골짜기에 도시가 있어서 전망이 시원하다.
옛 수도인만큼 고풍스러운 느낌의 시내 풍경

 

어쩜 이런 첩첩산중 계곡 속에 마을을 짓고 살았는지, 도로 위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벨리코 터르노보’는 제2차 불가리아 왕국의 수도로 원래는 ‘황제들의 도시’를 의미하는 ‘터르노보(Tarnovo)’라고 불렸지만 최근에 ‘위대한’이라는 뜻의 ‘벨리코(Veliko)’가 붙여졌다. 이름만큼 불가리아에서 중요한 곳이어서 오스만제국에서 독립한 뒤에 이곳에서 헌법을 만들고 소피아로 수도를 옮겼다고 한다.

 

 

차레베츠 요새로 들어가는 길.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차레베츠 요새(Tsarevets fortress)’이다.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였기에 옛날부터 끊임없이 전쟁을 겪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세월에 무너진 돌무더기와 그 터만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요새답게 강으로 둘러싸인 지형 사이에 있고 벨리코 터르노보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탁 트인 전망이 시원시원했다.

 

 

성당 내부의 벽화, 모더니즘 스타일로 불가리아 역사를 그렸다고 한다.

 

요새 꼭대기엔 정교회 성당이 있는데 오래전부터 있던 성당은 전쟁을 거치며 파괴되고 불가리아 건국 1300주년을 기념하여 1981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정교회 성당과는 달리 내부의 벽화가 모더니즘 스타일의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보통 성경에 나온 내용이나 성인들이 그려져있는 다른 정교회 성당과 달리 불가리아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옮긴 것이라고.

 

‘여행자를 부탁해’ 너무나 맛있는 불가리아 요리들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고 불가리아에 가게 되면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바로 불가리아 요리.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불가리아 출신인 미카엘 셰프가 한국 음식을 보며 비슷한 것이 불가리아에 있다고 하는데 항상 출연진들은 ‘이런 요리가 불가리아에도 있다고요?’하며 못 믿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대체 뭐가 얼마나 한국요리랑 닮았으면 뭐만 만들면 ‘이거 불가리아에도 있는데요’라는 말을 하는 거야! 가게 되면 꼭 내가 확인해봐야지, 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미카엘 셰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이곳, 불가리아에서도 한국 음식과 꽤나 비슷한 음식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다.

 

마치 동그랑땡같은 완자. 두부대신 치즈가 들어가있었다.

 

신기하게도 재료가 조금씩 다를 뿐, 형태나 만드는 방법은 우리나라 음식과 꽤 비슷한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우리 부부의 단연코 넘버원, 식당마다 보이면 시키고 따로 전문점까지 찾아가며 여행 내내 먹었던 음식은 ‘쉬켐베 초르바(Shkembe chorba)’라 부르는 ‘내장 수프’였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 맛, 쉬켐베 초르바. 얼큰한 내장국맛!

 

초르바는 수프를 뜻하는 말로 비슷한 음식을 세르비아, 터키, 멀게는 중앙아시아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특히나 불가리아에서 먹은 쉬켐베 초르바가 가장 우리 입에 착 감겼다. 여행하면서 뜨겁고, 가슴을 진하게 울리는 고기 국물이 당길 때면 불가리아에서 먹은 쉬켐베 초르바가 생각나곤 했다.

 

 

다양하고 저렴한 불가리아 요거트들
우리도 매일 다양한 브랜드의 요거트를 먹어봤다.

 

그 외에도 불가리아에서 또 먹어봐야 할 음식은 우리나라에서도 장수의 비결로 유명한 요거트. 슈퍼마켓에 들어가면 정말 요거트의 나라답게 요거트들이 냉장고를 가득 메우고 있는데 현지인들 말로는 그냥 아무거나, 저렴한 것을 사도 상관없다고 한다.

여름에는 이 요거트를 사용해 만든 ‘타라토르(Tarator)’라는 차가운 수프를 보양식으로 많이 먹는다는데 슈퍼마켓에는 따로 만들 필요 없이 이미 만들어진 타라토르를 대용량으로 팔고 있었다.

요거트, 딜, 오이, 마늘, 견과류와 올리브유로 만들어 처음엔 ‘이게 무슨 맛이지?’ 싶다가도 나중엔 맛을 들여 냉장고에 차갑게 식힌 타라토르를 간식으로 종종 먹었다.

 

 

치즈를 듬뿍 뿌린 숍스카 샐러드

 

유제품이 유명하다 보니 치즈가 아낌없이 수북하게 올라가는 숍스카 샐러드(Shopska salad)도 별미였고 야채와 고기를 철판에 볶아만드는 닭갈비 같은 메뉴부터, 옹기 같은 토기에 진득하게 끓여내는 고기 요리들은 불가리아 사람들도 즐겨먹는 칠리 고추가 들어가서 그런지 정말 우리 입에 너무 잘 맞았다.

 

 

토기에 넣고 뭉근히 익힌 요리들. 따끈한 감칠맛이 꼭 우리나라 요리와 닮아있었다.

 

그래서 소피아, 플로브디프, 벨리코 터르노보와 불가리아의 여름 수도라 불리는 바르나, 부르가스를 여행하고 국경도시인 루세까지 여행하고 불가리아를 떠나려니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 입에 착착 잘 맞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나라가 또 유럽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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